책을 되새김질하다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대빈창 2023. 9. 15. 07:00

 

책이름 :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

지은이 : 정희진

펴낸곳 : 교양인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처럼 읽기』, 『낯선 시선』, 『아주 친밀한 폭력』, 『혼자서 본 영화』,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내 방의 책장에서 어깨를 겨누고 있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책들이다. 더 이상 책을 들여놓을 공간이 부족했고, 군립도서관에 발걸음을 했다.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3․4․5권을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나는 작가 정희진의 마니아일까. 그가 출간한 단행본을 빼놓지 않고 잡았다.

작가가 20여 년 동안 쌓아온 영화에 대한 내밀한 기록 『혼자서 본 영화』에 이은 영화평론집이었다. 글쓰기 시리즈 표지그림의 콘셉트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여자였다. 시리즈 4권은 영화비평서답게 카페로 보이는 실내에서 뒷모습의 중년 여성이 창 안 가득 들어찬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날씨는 흐렸고 창문에 빗방울이 맺혔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호수 풍경이 스크린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는 3장에 나뉘어 영화․드라마․다큐멘터리에 대한 비평 18편이 실렸다.

1장 「갈증의 언어-언어는 언제나 현실보다 늦게 당도한다」는 여성주의적 관점의 영화 비평 6편을 담았다. 1990년대 말 IMF 사태 직후 ‘영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현재 삶을 추적한 강유가람 감독의 2019년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사회를 살아내야 하는 한국 여성, 이경미 감독의 2015년작 〈비밀은 없다〉. 안전이라는 사회적 공공재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권력․경제력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 김태균 감독의 2017년 작 〈암수살인暗數殺人〉.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건 지역주민의 갈등, 김기덕 감독의 2015년 작 〈스톱Stop〉. 재능과 인간성의 불일치 때문(할리우드 미투 운동 과정에서 발언이 문제가 된)에 더는 좋아할 수 없게 된 맷 데이먼. 흑인의 관점에서 영화로 읽는 미국사, 라울 펙 감독의 2016년 작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I Am Not Your Negro).

2장 「통증의 위치-나는 어디에서 말하고 있는가」는 우울과 외로움을 비롯한 몸의 통증을 사유한 글 7편을 담았다. 물리학과 실존주의를 융합하고 두 세계를 모두 넘어서 제3의 지식을 만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2013년 작 〈그래비티Gravity〉. 쓴 인생과 고통에 관한 시, 클린트 이스우트 감독의 2004년 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 성폭력 여성이 겪은 고통과 편견, 조너선 캐플런 감독의 1988년 작 〈피고인The Accused〉.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노희경 작가의 2022년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1983년 이탈리아 남부 유럽 중산층 가족의 로맨틱 영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2017년 작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19세기경 일본 동북부의 오지산골 척박한 환경의 자급자족하는 사람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1983년 작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 인터넷 세계를 다룬, 홍석재 감독의 2014년 작 〈소셜포비아〉.

3장 「타자의 목소리, 나의 목소리-다름은 진실을 해체한다」는 사회와 공동체의 역할을 성찰하는 비평 5편을 모았다. 1988년 도쿄에서 발생한 ‘버림받은 네 남매’ 사건을 소재로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4년 작 〈아무도 모른다誰も知らない〉. 제2차 세계대전 히틀러와 측근을 제거하려는 실화를 다룬, 브라이언 싱어의 2008년 작 〈작전명 발키리〉. 근대 자본주의의 기본 인프라이자 근대성을 상징하는 기차를 무대로 한, 봉준호 감독의 2013년 작 〈설국열차〉, 연상호 감독의 2016년 작 〈부산행〉, 토마스 매카시 감독의 2003년 작 〈스테이션 에이전트The Station Agent〉. 우리 안의 식민성을 다룬, 김은숙 작가의 2018년 작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최초의 민간인 여성 비행사 박경원을 다룬 윤종찬 감독의 2005년 작 〈청연靑燕〉. 베트남전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 이길보라 감독의 2018년 작 〈기억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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