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이주헌의 프랑스 미술 기행
지은이 : 이주헌
펴낸곳 : 중앙M&B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두 번이나 흘러갔다. 그 시절 나는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책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손에 넣었다. 『이주헌의 프랑스 미술관 순례』(랜덤하우스, 2006)라는 이름으로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내가 20여년 만에 다시 펼친 책은 2001년에 출간된 초판이었다. 책은 프랑스 전역에 흩어져있는 화가의 고향, 아틀리에, 그림을 그렸던 곳, 미술관을 순례한 미술 감상기였다. 책은 17개의 챕터로 구성되었다.
1.칼레Calais: 로댕과 〈칼레의 시민〉, 백년전쟁(1337-1453) 시기였던 1347년 프랑스 북부도시 칼레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영국 에드워드 3세에게 항복했다. 칼레 시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항복 조건은 지체 높은 여섯 사람의 제외였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은 칼레시로부터 1884년 작품을 주문받아 1895년 시청사에 세웠다. 〈칼레의 시민〉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정 살아있는 영혼을 불어넣은 데서 로댕의 천재성을 읽을 수 있다.
2.지베르니Giverni: 모네의 정원, 지베르니는 인상주의 화가 모네(Claude Monet, 1840-1926)가 말년에 살았던 센 강변의 마을이다. ‘인상주의’는 모네의 걸작 〈인상, 해돋이〉(1873)에서 비롯되었다. 1883년 지베르니로 이사한 후 죽을 때까지 연못을 소재로 40여 년간 3백점의 작품을 그렸다. 대작만 40여 점에 달했다.
3.샹티이Chantilly: 콩데 미술관, 콩데 성은 14세기에 처음 세워졌고, 17세기 그랑 콩데(Grant Condē)로 불리던 부르봉가의 루이2세가 성을 상속받은 후 부르봉가 콩데 공작들의 재산으로 이어져왔다. 콩데 미술관은 중세 서양미술사의 최고 걸작인 15세기의 아름다운 채색 필사본 기도서 〈배리 공작의 풍요로운 시절〉을 소장하고 있다.
4.랭스Reims: 랭스 대성당과 천사상, 성당은 816년 경건왕 루이가 대관식을 가진 이래 샤를10세의 대관식(1825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프랑스 왕들이 공식적으로 왕관을 썼던 곳이다. 문이 세 개있는 서쪽 파사드의 중앙문과 왼쪽 문에 웃는 천사가 하나씩 서있고, 여러 우아한 천사들로 인해 ‘천사들의 성당’으로 불렸다.
5.퐁타방Pont-Aven: 고갱의 자취를 찾아, 19세기 후반 고갱과 일군의 젊은 화가들이 예술혼을 불살랐다.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 1886년 여름에 도착하여 1891년 타히티로 떠나기 전까지 도피처로 삼았던 곳이다. 단순한 형태와 표현적인 색채, 영적인 주제를 선호했다.
6.바이외Bayeux: 상트르 기욤 르 콩케랑, 1077년 완성된 〈바이외 태피스트리the Bayeux Tapestry〉는 정복왕 윌리엄(1028경-1087)의 영국 정벌 배경과 전개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풀어냈다. 태피스트리는 1077년 바이외 대성당이 봉헌될 때 봉헌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제작된 장식미술이었다. 11세기 직물 작품이 1천년 가까이 온전히 보존된 것은 기적이었다.
7.오르낭Ornans: 쿠르베 미술관,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1819-1877)는 19세기 사실주의 미술의 최고 거장이다. 쿠르베는 철저히 자신이 경험하고 확인한 것만을 그렸다. 그는 말했다. "나는 천사를 그리지 않는다.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화가의 대표작은 〈오르낭에서의 매장〉(1849-1850), 〈화가의 아틀리에〉(1855), 〈석공들〉(1849-50) 등.
8.콜마르Comar: 운터린덴 미술관, 마티스 그뤼네발트(1475경-1528)의 〈이젠하임 제단화〉를 소장한 운터린덴 미술관은 1853년 개관했다. 〈이젠하임 제단화〉는 아홉 장면의 그림과 두 장면의 목조 작품을 여러 차례 접었다 폈다 하면서 볼 수 있는 중층 다면화다. 제단화는 이젠하임 병원을 위해 만들어졌다. 신앙은 막연히 고통을 피하고 기적을 기다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고통과 맞서 싸움으로써 스스로 기적을 만드는데 있다고 화가는 강조했다.
9.라스코Lascaus: 라스코 동굴, 1940년 17세 소년 마르셀 라비다는 우연히 동굴과 1만7천년전 동굴벽화를 발견했다. 전체 600개의 회화 이미지와 1,500개의 암각 이미지의 동굴벽화는 원시 미술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실제 동굴은 1963년 일반인들에게 폐쇄되었고, 1983년 200m 떨어진 곳에 똑같은 인공동굴(라스코 Ⅱ 동굴)을 만들었다.
10.리옹Lyons: 리옹 미술관, 프랑스 대혁명후 혁명정부는 1801년 15곳 지방도시에 미술관 설립 포고령을 내렸다. 리옹 미술관은 베네딕트파 수녀원 건물 생 피에르 관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걸작 회화로 로렌초 코스타의 〈그리스도의 탄생〉, 17세기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성 프란체스코〉, 프랑스 낭만주의의 기수 테오드르 제리코의 〈미친 여자〉 등.
11.니스Nice: 마티스 미술관, 17세기 제노아 양식의 미술관은 총 68점의 회화, 236점의 드로잉, 218점의 판화, 57점의 조각이 소장되어 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푸른 누드 Ⅳ〉는 과슈 색종이을 오려 붙인 작품으로 지중해의 아름다움을 푸른 누드에 담았다. 마티스는 말했다. “색은 단순할수록 내면의 감정에 더 강렬하게 작용한다.”
12.바르비종Barbizon: 밀레 아틀리에,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는 1849년 바르비종으로 이주한 후 죽을 때까지 이곳에 머물며 그만의 농민상을 그렸다. 그는 바르비종의 샤이 들판에서 매일 지평선을 바라보며 〈이삭 줍기〉, 〈만종〉, 〈양 치는 소녀〉, 〈건초를 묶는 사람들〉 등을 남겼다. 밀레가 그렸던 농민상은 농경이 시작된 이래 인간이 자연과 노동을 통해 스스로에게 부여해 온 정체성을 영원한 이미지로 고정시켰다.
13.오베르Auber sur Oise: 반 고흐의 집과 정원,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1890년 5월 오베르의 라부 여인숙에 짐을 풀었다. 10주(70여일) 동안 유화 완성작과 습작 70여점, 드로잉과 판화 수십 점을 그렸던 생애 마지막을 불살랐던 곳이다. 〈가셰 박사의 초상〉,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 고흐의 그림은 대상의 외형을 성실히 관찰하고 그것을 충실히 표현하기 보다는 화가 내면의 감정과 느낌을 우선적으로 표출했다.
14-17.파리Paris는 4개 챕터로, 파리 시내 한 복판의 사회․문화 방면의 유명 인사들이 잠든 무덤 몽파르나스․페르 라셰즈 묘지.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민중을 이끄는 여신〉 등 낭만주의의 대표 화가 외젠 들라클루아(1798-1863) 미술관. 거대한 스케일의 건축적 조형미 부르델(Antione Bourdelle, 1861-1929) 미술관. 근대미술을 낳은 모든 미술인들의 마음의 고향 몽마르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