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독서의 역사
지은이 : 알베르트 망구엘
옮긴이 : 정명진
펴낸곳 : 세종서적
‘10세기 페르시아의 수상이었던 압둘 카셈 이스마엘은 여행을 할 때도 11만 7천권에 달하는 책들과 헤어지기 싫어서 4백 마리나 되는 낙타들에게 알파벳 순서로 걷도록 특별 훈련을 시켜서 책을 몽땅 싣게 했다.’(279쪽) 이 구절을 발견한 책은 여성학자 정희진의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였다. 군립도서관을 검색했다. 다행히 『독서의 역사』 초판이 있었다.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 1948- )은 2018년 구텐베르크 상을 수상했고,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으로 세계 최고의 독서가․장서가였다. 부제가 ‘책과 독서에 관한 인류의 끝없는 갈망과 그 위대한 승리’로 독서가는 인류 최초로 문자를 남겼던 수메르인 농부에서, 21세기 정보화시대의 컴퓨터 스크린까지 수십 세기 인류문명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책은 문자의 시작에서 글 읽기, 독서 방법의 변화, 책의 형태, 독서의 의미 등을 22개 챕터에 나눠 서술했다.
책을 열면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펼친 두루마리를 읽는 젊은 날의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숲 속 나무둥치에 앉아 작은 책을 펼친 소년까지 열여덟 장의 독서가의 모습을 담은 도판이 실렸다. 열한 번째 사진은 한국의 어느 스님이 7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팔만대장경 경판 하나를 뽑아 읽고 있었다. 경남 합천 가야산 해인사 장경각의 팔만대장경 판각 시기는 고려말 몽고침입기 1236~1251년이다.
저자가 열여섯 살(1964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서점 ‘피그말리온’에서 일할 때 보르헤스가 여든여덟 살 어머니 손을 잡고 서점에 나타났다. 대문호는 글을 읽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부탁했고, 그는 저녁시간 또는 시간이 나면 아침시간에 2년 동안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 주었다. 광고인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는 1904년 카프카가 친구 오스카르 폴라크에게 보낸 글의 한 문장에서 따왔다. ‘책은 우리 내부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여야 해’(141쪽)
1865년 쿠바의 엽궐련 제조업자․시인 사투르니노 마르티네스는 엽궐련을 마는 노동자들을 위한 신문 〈라 아우로라〉를 10월 22일 창간했다. 19세기 쿠바의 노동인구에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의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마르티네스는 엘 피가로 공장의 허락을 얻어, 대중 앞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고용했다. 다른 공장들도 마침내 그 뒤를 따랐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두루마리 50만개 정도를 보관할 때까지 계속 확장되었다. 나머지 4만 여개의 두루마리는 라코티스의 유서 깊은 이집트 지역 세라피스 사원에 딸린 건물에 보관되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의 기독교 서구 사회에서 소장도서가 2천권이 넘었던 도서관은 아비뇽의 교황청 도서관 한 곳 뿐이었다.
B.C 3세기초 북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칼리마코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책을 희곡, 웅변, 서정시, 법률, 의학, 역사, 철학 그리고 시문집 8개로 분류했다. 이 분류목록은 로마황제의 도서관들, 그리고 뒤이어 동로마제국에 이어 전체 기독교 유럽 도서관들의 모델이 되었다. 1803년 피렌체 토스카나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리브리는 스무 살의 나이에 피사대학 수학부 교수직 제안을 받은 뛰어난 인물이다. 1830년 민족주의 결사단체의 위협으로 파리로 이주해 파리 시민이 되었다. 1841년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고대어나 현대어로 쓰여진, 현존하는 모든 부서의 공공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필사본 전부의 공식 카탈로그를 감독하는 어느 위원회의 서기관’에 임명되었다. 리브리 백작은 인류역사상 가장 노력한 책도둑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프랑스 전역의 도서관을 드나들었고, 전문지식으로 숨은 보물까지 찾아냈다. 1848년 혁명으로 영국으로 달아나면서 2만5천프랑 값어치의 책 열여덟 박스를 가져갔다. 당시 숙련노동자의 하루 일당은 4프랑이었다.
영국의 노예 소유주들은 흑인들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서리를 쳤다. 노예 폐지론자들의 팸플릿을 읽을 것이고, 성경을 통해 반항과 자유라는 개념을 깨우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 세기에 걸쳐 수많은 독재자들이 잘 알고 있었다시피 대중은 문맹일 때 가장 다스리기 쉬운 집단으로 남는다.’(4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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