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뮤지코필리아
지은이 : 올리버 색스
옮긴이 : 장호연
펴낸곳 : 알마
내가 읽은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1933-2015)의 다섯 번째 책이다. 뮤지코필리아(Musicophilia)는 뮤직(Music)+사랑(Philia)의 합성어로 ‘음악사랑’이라는 의미였다. 부제가 ‘뇌에 음악에 관한 이야기’로 병원 환자들의 사례와 독자들의 편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신경질환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분투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글은 4부에 나눠 29장으로 구성되었다.
뉴욕 주 북부의 작은 도시 정형외과의 토니 치코리아는 마흔두 살의 건강한 남자였다. 벼락을 맞은 후 음악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 생겼다. 음반을 사 모으고 피아노를 독학으로 배우고 자작곡이 머리에 떠올랐다. 오토바이 사고로 중상을 입고, 이혼을 했으나 그의 피아노 연주와 작곡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마흔다섯 살의 건장한 존 S.는 음악이 들리면서 발작을 일으켰다. 열다섯 살에 머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는데, 이때 측두엽에 미세한 상처를 입은 것으로 짐작된다. 발작 전에 들었던 바이올린 독주곡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19세기의 저명한 음악비평가 니코노프는 마이어베이어의 오페라 〈예언자〉를 연주할 때 처음 발작을 일으켰다. 그후 아무리 조용한 음악을 들어도 온 몸에 경련이 일어나는 음악공포증에 휩싸였다. 음악간질(musicolepsia)이다. 닉 유네스는 제임스 반 휴슨의 〈러브 앤 메리Love and Marriage〉가 거의 열흘동안 머릿속에서 쉬지 않고 맴돌았다. ‘뇌벌레(brainworm)' 형상이었다. 급기야 잠까지 설쳤고 음악을 멈추려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음악적 재능이 풍부한 피아니스트였던 일흔 살의 지적인 셰릴 C. 부인은 15년 넘게 진행성 신경성 난청을 앓았다. 이비인후과 처방약을 늘리면서 대학시절 즐겨 연주했던 곡의 음악환청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세 살 때 수막염을 앓아 팔다리와 목소리에 경련과 마비가 온 마틴은 서번트savant(뇌기능 장애로 일부 능력은 특출하나 일반 지능은 평균에 훨씬 못미치는 사람)로 2,000편이 넘는 오페라를 알고 있었다.
영국의 저명한 음악가․음악학자 클라이브 웨어링은 치명적인 헤르페스 뇌염에 감염되어 몇 초 밖에 기억하지 못하고 새로운 사건․경험은 바로바로 삭제되었다. 그가 노래, 연주, 지휘를 하는 것은 행위의 연속적인 순간에 빠져들 때만 가능했다. 새뮤얼 S.는 육십 대 후반 뇌졸증을 앓은 후 표현성 실어증을 보였다. 그는 언어치료를 받았지만 단 한 마디도 못했다. 음악치료사를 만나면서 노래 가사를 부르고 점차 말을 되찾기 시작했다.
지적인 중년남자 솔로몬 R.은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독특한 동작장애 운동이상증을 앓았다. 그는 낭송이나 기도에 관심이 없었는데, 운동이상증이 나타나면서 생리적 증후를 통해 자연스럽게 기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문 재즈드러머 데이비드 앨드리지는 자신의 틱 증상을 감추기 위해, 폭발하는 에너지를 분출시키려 음악에 의지했다.
MIT에서 공부한 삼십 대 후반의 총명한 공학자 해리S.는 대뇌동맥류가 파열되는 사고로 전두엽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그는 예전의 지적능력은 서서히 회복했지만 심각하게 망가진 정서는 그대로였다. 다만 노래를 부를 때만 음악에 적절한 감정을 담아낼 줄 알았다. 지능지수 60이하지만 과도한 음악성을 보이는 윌리엄스 증후군자(Williams Syndrome) 글로리아 렌호프는 절대음감 소유자로 2,000곡의 노래를 30개 언어로 부를 수 있다.
올리버 색스는 1974년 노르웨이에서 등반 중 조난사고를 당했다. 왼쪽 다리를 전혀 못 쓰는 상태에서 리듬과 박자의 힘으로 산을 반쯤 내려와 구조되었다. 힘줄을 잇는 수술 후에도 감각이 없었으나 음악의 도움으로 보행동작의 자연스런 리듬과 선율이 돌아왔다. 불면증으로 수면제를 복용했을 때 음악 꿈을 꾸고, 깨어났는데도 혼란스럽고 불쾌한 음악은 그치지 않았다. 전화로 나의 흥얼거림을 들은 친구는 노래가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라고 알려 주었다. 색스의 기억에 없는 노래가, 전날 있었던 사고가 상징물을 꿈속에서 정확히 찾아 낸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의학기술의 발달(기능성 MRI)로 우리가 음악을 듣고 상상할 때나, 작곡을 할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실제 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본성 속에 음악적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다. 뇌신경학자는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면서 음악의 힘을 느꼈다. “음악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내 주목을 끌었고, 뇌 기능의 거의 모든 측면과 삶 그 자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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