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색맹의 섬

대빈창 2023. 10. 18. 07:00

 

책이름 : 색맹의 섬

지은이 : 올리버 색스

옮긴이 : 이민아

펴낸곳 : 이마고

 

요즘 나의 책읽기는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1933-2015)에 푹 빠졌다. 여섯 번째 책이었다. 3주 간격으로 군립도서관에 발걸음을 하며 한 권씩 대여했다. 책은 2018년에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잡은 책은 2007년 초판이었지만 나는 감지덕지했다. 『색맹의 섬』은 뇌신경학자가 생전에 가장 애착을 가졌던 책이었다. 태평양 미트로네시아 군도의 작은 섬들을 여행한 기록이다.

1부 ‘색맹의 섬’은 핀지랩과 폰페이의 방문기로 뇌신경학자의 문화인류학자로서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올리버 색스와 안과의사 봅, 그리고 노르웨이의 생리학자 크누트가 일행이다. 핀지랩은 지름 2.5㎞의 초호를 세 개의 섬이 이 빠진 고리 모양으로 둘러싼 현재 인구 700명의 작은 섬이다. 일반적으로 3만 명중 한 명꼴로 나타나는 전색맹(검은색과 하얀색만 구분할 수 있는 색맹)이 12명 중 한 명꼴로 나타나 ‘색맹의 섬’이라고 불리었다.

전색맹과 환한 빛은 쳐다볼 수도 없는 ‘마스쿤’의 유래는 1775년 무렵 핀지랩 일대를 덮친 렝키에키 태풍 때문이었다. 1천명에 육박했던 섬 인구는 태풍으로 90%가 죽었고, 생존자 대다수도 기근으로 죽었다. 몇 년 뒤 섬 인구는 고작 20명으로 줄었다. 수십 년 만에 근친결혼으로 100명으로 인구가 늘었으나 유전적 특징이 퍼지기 시작했다. 태풍으로부터 200년이 흐른 오늘날, 섬 인구의 1/3이 마스쿤 유전자 보유자이고, 전체인구 700명 가운데 57명이 전색맹이다.

폰페이는 100개 가까운 인공 섬이 무수한 수로로 이어진 선돌기념비 문화유물 난마돌(Nan Madol)로 유명하다. 1950년대 폰페이의 외딴 마드 골짜기에 핀지랩 주민 600명의 비지飛地가 건설되었다. 오늘날 인구 2천명으로 성장했다. 만드는 지리적․인종적․문화적으로 고립되어 마스쿤은 핀지랩보다 여기서 더 흔했다. 그들은 사실상 섬안의 섬으로 어떤 접촉이나 결혼도 피해왔다.

2부 ‘소철 섬’은 괌과 로타의 여행기로 올리버 색스의 식물학자로서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괌은 1950-60년대 풍토병으로 신경학자들에게 특별한 방향을 일으켰다. 차모르 부족의 리티코-보딕(lytico-bodig)은 신경위축성경화증(ALS)과 비슷한 진행성 마비질환인 ‘리키코’로, 때로는 파킨슨증과 흡사하며 왕왕 치매와 함께 나나타는 질환인 ‘보딕’으로 다양하게 발현하는 질병이다. 이 질병은 괌 차모르족의 성인 1/10의 사망 원인이었다. 발병률은 본토보다 최소 100배 높았다. 우마탁 마을은 400배 이상이었다. 연구가 시작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 가설과 연구의 계보는 유전자, 소철, 광물질, 바이러스, 프리온으로 나누어졌다.

로타는 마리아나 제도에서 괌과 가장 가까운 섬이다. 로타의 소철 숲은 키가 작은 나무가 수백 그루씩 몰려있다. 소철은 성숙해서 조사할 방울열매가 매달릴 때까지는 암수를 구분할 수 없다. 수컷 소철 속은 하나의 열매를 맺는데 길이 30㎝ 이상, 무게는 13kg까지 나갔다. 수소철나무의 열매는 꽃가루받이를 할 준비가 되면 방울열매가 열을 발산하는데 주변의 기온보다 20℃ 이상 올라간다. 소철은 최고로 큰 웅성배우자에 최고로 큰 난세포에 크게 자라는 잎 끝에 큰 방울열매를 매다는 고대식물이었다.

섬이 바깥세상으로 열리고, 사람들이 죽거나 다른 종족과 결혼하면서 유전적 특성이 희소해지고, 희귀질환도 점차 사라졌다. 작은 섬들처럼 고립된 지역에서 발생하는 유전병의 수명은 여섯에서 여덟 세대로, 대략 200년이 지나면 그에 얽힌 기억과 흔적은 가차 없는 시간 속으로 사라져갔다. 올리버 색스는 뇌신경학자로 본령은 의사였다. 그의 섬사람들과의 만남은 매번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의사와 환자 관계를 떠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뜻한 교감과 인간애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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