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지은이 : 신형철
펴내곳 : 한겨레출판
문학평론가는 문단의 스타였다. 나는 어느 글에서 시인과 작가들이 그의 해설을 받으려고 줄을 선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잡은 시집과 소설에서, 그의 해설은 낯익었다. 나에게 문학평론가의 세 번째 책이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첫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 2011) 이후 7년여 만에 두 번째 나온 산문집이었다. 나의 찬찬치 못한 덜렁거림이 순서를 바꾸었다. 신생도서관 《지혜의숲》에 들렀다가 어깨를 겨눈 책에서 생각 없이 빼들었다. 아무려면 어떤가. 3주 뒤 문학평론가의 첫 번째 산문집은 내 손에 들릴 것이다.
책은 5부에 나뉘어 각 부마다 17편의 글이 실렸다. 서문 「두 번째 산문집을 묶으며」, ∣부록∣의 노벨라 베스트 6, 추천사 자선 베스트 10, 인생의 책 베스트 5까지 89편을 담았다. 각 부의 성격을 대변할만한 글을 부의 첫머리에 배치했다. 글은 시와 소설, 영화, 사진, 노래 등 다양한 작품에 평론가의 섬세한 눈길이 느껴졌다.
1부는 슬픔에 관한 글들을 따로 추려 묶었다. 트로이 정벌에 나선 아가멤논 군대를 막아선 여신 아르테미스의 신화적 사건을 변주한 영화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나오는 이야기에 대한 벤야민의 해석.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꿈. 론 마라스코․브라이언 셔프의 논픽션 『슬픔의 위안』. 김성훈 감독의 트라우마를 다룬 〈터널〉, 미성숙한 사랑을 다룬 민용근 감독의 〈혜화, 동〉. 인간의 뒷모습이 인생의 앞모습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 노인의 허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프로이트와 릴케 ’덧없음‘과 ‘환멸’. 오르페우스 신화는 회환에 대한 이야기 모니카 마룬의 『슬픈 짐승』. 울음을 참는 자 김경후의 「코르코」. 가난한 젊은이의 사랑 박형준의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체념적인 고통 이소라의 노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전짓불의 폭력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청준의 「소문의 벽」. 폭력에 대한 감수성 한강의 『소년이 온다』. 진실한 삶에 대한 고민 이준익 감독의 〈동주〉.
2부는 소설에 대한 글을 모았다. 사물성․사진성․내면성 샬럿 코튼의 『현대예술로서의 사진』. 극적인 순간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 삶 바깥을 향한 도주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 1945년 소련치하 루마니아 독일인들이 굴락(강제수용소)으로 끌려 간 이야기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상처받은 사람들 임철우의 『이별하는 골짜기』. 장악掌握의 문학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 한국적 의식구조의 과격한 폭력 배수아의 『올배미의 없음』․김사과의 『풀이 눕는다』.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은 인물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역설적인 메시지는 삶을 대하는 태도 이상의 『이상 소설 전집』. 기독교적 환상문학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음악 그 자체가 서술자 역할 가즈오 이시구로의 「녹턴」. 독일어․일본어를 오가며 글을 쓰는 작가 다와다 요코의 『영혼 없는 작가』. 매체에 대한 자의식 독일작가 W. G. 제발트. 무의미한 세계의 무의미함을 견뎌내는 증거 정영문. 소설가라는 은유 체계가 효율적인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 중요한 생각들을 만나리라는 기대 김숨의 『간과 쓸개』․윤이형의 『큰 늑대 파랑』․백영옥의 『아주 보통의 연애』. 문학은 믿음의 지원군.
3부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촌평이다. 피살된 박정희의 신화화는 한국현대사의 불행. 우리 문학사의 예언자 김수영. 깊이 있는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자기 고통처럼 느끼는 사람. 한국은 물질적 진보를 제외한 정신적 진보의 수준은 세계 순위 하위권. 태극기 집회는 정치적 저항이 아닌 존재론적 축제. 메릴 스트립의 골든글로브 수상소감은 들어서는 권력에 대한 비판. 타인을 조롱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가장 저급한 쾌감. 분단체제의 보수는 민주적 법치를 수용하지 않는 집단. 문제적 시스템에서 성찰적 긴장이 없으면 악의 편. 폭력성이 한국사회의 본질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 18대 대선의 역사적 아이러니 김승희의 「희망이 외롭다」. 용산참사는 국가 살인 김일란․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 이탈리아 작가 안토니오 타부키의 정치소설 『페레이라가 주장하다』. 어떤 고행의 실감에 도달해보려는 이영주의 「공중에서 사는 사람」. 재난의 개별성을 뭉개버린 종교적 도그마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칠레의 지진』. 천안함 사고의 단호한 응징을 촉구하는 보수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전쟁의 희생자는 권력자가 아닌 힘없는 아내와 자식들.
4부는 시에 대한 글을 묶었다. 문학동네시인선 50호․100호 발간에 부치는 글. 인간의 언어로 제기된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릴케 시선집 『두이노의 비가』. 릴케의 「고대 아폴로의 토르소」의 마지막 문장 ‘너는 너의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무위無爲의 언어로 쓰인 시 진은영의 『훔쳐가는 노래』. 여성의 진정한 이름을 되찾기 위해 시를 쓰는 김혜순의 『슬픈치약 거울크림』. 노벨문학상 수상작 번역 붐은 일종의 축제. 현재의 생을 긍정하는 찬가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기억이 나를 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의 표제에 얽힌 일화. 무라카미 하루키의 「토니 다키타니」의 고독․심보선의 「매혹」의 행복. 순간의 진심을 아는 시인 신철규의 「유빙」. ‘모른다’고 말하는 시 황인찬의 『구관조 씻기기』. 문학하는 태도 김수영의 ‘정직’․이상의 ‘포즈’. 그가 마지막에 도달한 정신의 높이를 보여주는 김수영의 「풀」. 매인 데가 없는 천진함 김영승의 「흐린 날 미사일」. 문학과지성시인선 400호 발간에 부치는 글. 정확하게 사랑하고 정확하게 죽는 일에 대한 생각 장승리의 「말」.
5부는 문화에 대한 글들이다. 서로를 살아가게 하는 힘 사랑. 마르크스의 사랑은 ‘관계’. 진정한 비판은 적의 가장 복잡하고 심오한 부분과 맞서는 일. 기술의 발달은 타자의 타자성을 점차 축소하는 방식으로 진행. 문인들이 가장 많이 읽고 있는 황현산의 『밤이 선생이다』. 정확한 순간에 제대로 사용될 때 빛을 뿜는 오래된 단어. 손 편지에 담긴 문어체의 특별한 힘. 인권에 대한 섬세한 옴니버스 영화 민용근 감독의 〈어떤 시선〉. 생각하는 방법은 선택하는 방법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이것은 물이다』. 공자의 도道에 대한 네 가지 인간 유형. 멘토는 지혜․명성보다 신뢰가 중요. 성공은 능력 때문이고 실패는 환경 때문이라는 기괴한 논리. 한국 현대문학의 고향 김승옥의 「무진기행」. 점점 빨라지는 세상은 문학에 적대적. 인간의 내면과 진실에 다가가는 신중하고 섬세한 태도 김희정 감독의 〈설행-눈길을 걷다〉. 대중을 얕잡아보는 대중친화적인 소설․영화. 다르게 흐르는 시간 김수영의 「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