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가만한 당신
지은이 : 최윤필
펴낸곳 : 마음산책
여성학자 정희진의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를 통해 저자 최윤필을 알게 되었다. 군립도서관을 검색하고 두 권의 책을 대여했다. 최윤필(1967- )은 〈한국일보〉의 기자로, 2014년부터 매주 토요일 원고지 30장 분량의 기사를 연재했다. 외신 부고에 올라 온 이들을 소개하는 지면은 ‘가만한 당신’이었다. 차별과 억압과 무지와 위선에 맞선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가치와 권리를 쟁취하고자 우리 대신 우리보다 앞서 싸워온 이들을 소개했다. 부고訃告라는 형식을 통해 35인의 삶을 온전히 복원시킨 인물 인문서였다.
콩고전쟁중 강간당한 여성과 고아, 성폭력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거둬 치료하고 함께 먹고 살고 일하고 가르친 ‘마마’라는 애칭의 콩고 레베카 마시카 카추바(1966-2016). 자궁경부암․난소암 수술환자에게 미량의 암특이 단백질을 백신처럼 투입해 잔존 암세포를 공격하고 고형 종양의 재발을 방지하는 치료법을 개발한 미국 종양학자 홀브룩 콜트(1977-2016). 불완전골형성증 희귀유전병 환자로 태어나 1미터가 되지 않은 키로 장애인 인권을 펼친 호주의 스텔라 영(1982-2014). 요세미티국립공원 하프돔 북서벽을 로프와 안전장비를 거의 하지 않고 오른 미국의 암벽등반가 딘 포터(1972-2015). 무조건 완벽하고 최고여야 한다는 ‘모성motherhood'이라는 아득한 기준을 부정한 미국의 정신분석 상담의사 바버라 아몬드(1938-2016). 미국 최초의 자살예방센터를 세우고, ‘생명의 전화’ 서비스를 시작한 심리학자 노먼 파버로(1918-2015). 법정투쟁으로 인디애나주의 동성혼 합법화를 이끌어 낸 니키 콰스니(1976-2015). 환경과 문화등을 포괄하는 경제학 너머의 경제학을 지향한 일본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우미(1928-2014). 여성성기절제FGM을 사실상 처음 고발한 가나출신 영국 간호사 에푸아 도케누(1949-2014). 자연을 복원시키는 해법으로 사유지를 사들여 국립공원화한 더글러스 톰킨스(1943-2015). 196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내건 여성 파워의 상징 〈리벳공 로시〉의 모델 메일 도일 키프(1922-2015). 1986년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참사 진실을 증언한 ‘고체연료 로켓 추진체’ 제작 프로젝트 담당 기술자 로저 보이스졸리(1938-2012)와 로버트 이블링(1926-2016). 1970년대 여성 최초로 뉴욕 중심부에 섹스토이숍을 연 델 윌리엄스(1922-2015). 1960년대 흑인인권 투쟁의 거의 모든 현장에 섰던 인권법률가 존 마이크 도어(1921-2014). 1급 살인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중에 30년 만에 무죄가 밝혀져 출소했으나 폐암으로 1년 만에 숨진 글렌 포드(1949-2015). 성․가정폭력, 강제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구호․회복․자립을 도운 영국의 여성인권운동가 데니스 마셜(1961-2015). 기독교의 퇴행적 보수성과 몽매주의에 맞서 교회의 혁신과 종교건강성 회복에 헌신한 종교학자 제럴드 라루(1916-2014). 여성과 계급의 혁명적 건강성을 믿고 미래를 낙관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로절린 벅셀던(1939-2015). 미국야구 역사상 최고의 익살꾼 에버렛 라마 브라지스(1927-2015). 미국군인노조ASU를 설립하고 이끈 앤드루 딘 스태프(1944-2014). 국가적 양심과 인류 보편 윤리를 추구한 호주 원주민 작가 도리스 필킹턴 가리마라(1937-2014). 뉴욕경찰청 마약특별조사팀SIU의 부패․비리를 목숨을 걸고 조사한 비밀요원 로버트 루시(1940-2015). 스페인 내전 국제여단의 ‘에이브러햄링컨여단’의 마지막 병사 델머 버그(1915-2016). 조력자살 법안을 이끌어 내기위해 단식으로 죽은 영국의 다발성경화증 장애인 데비 퍼디(1963-2014). 언론 흑역사 「지미의 세계」 기사조작 사건을 직접 조사해 보고서를 작성한 윌리엄 그린(1924-2016). 마리화나 전문 월간지 〈하이타임스〉의 발행인․경영인 마이클 존 케네디(1937-2016). 수정헌법이 보장한 자유 영역을 넓히는데 공헌한 미국시민자유연맹 상근변호사 앨버트 모리스 밴디크(1929-2015). HIV 감염자 조기치료를 주장한 선각자 네덜란드의 요세프 랑에(1954-2014). 이슬람 페미니즘의 독자적 영역을 개척한 모로코의 파테마 메르니시(1940-2015). 재소자 인권과 수형제도 개선을 위해 헌신한 미국 변호사 앨빈 브론스타인(1928-2015). 아우슈비츠 생존자로 반시오니즘과 팔레스타인 인권운동에 헌신한 하요 마이어(1924-2014). 공권력의 프라이버시 침해실태를 폭로한 카스파 보든(1961-2015). 세계적인 군비경쟁을 폭로한 루스 레거 시버드(1915-2015). 유골 관찰과 분석 등의 기법으로 피살자의 신원과 범죄 가능성을 확인하는 길을 연 미국의 법의인류학자 클라이드 콜린스 스노(1928-2014). 조력자살 합법화 운동을 펼친 영국의 의사 엘리자베스 리비 윌슨(1926-2016).
표제 ‘가만한’은 ‘조용히, 가만히 있다’라는 뜻으로 드러나지 않아 조용했으며 떠난 뒤에도 가만한 당신들이었다. 나에게 하나같이 낯선 인물들이었다. 저자는 국내에 알려진 이들을 제외했다고 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말했다. “선의에서 신선한 발상이 나온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획이다. 지구상에 이렇게 다양한 문제, 다양한 질문과 투쟁으로 살다 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