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너의 하늘을 보아

대빈창 2023. 10. 12. 05:23

 

책이름 : 너의 하늘을 보아

지은이 : 박노해

펴낸곳 : 느린걸음

 

『노동의 새벽』(개정판, 2014) /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2010) / 『너의 하늘을 보아』(2022)

 

내 방 책장에서 어깨를 겨누고 있는 시인・노동운동가・혁명가 박노해(朴勞解, 1957- )의 시집이다.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 ‘얼굴 없는 시인’의 『노동의 새벽』(1984)이 나왔다. 1989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1991년 체포・고문・구금되어 사형을 구형받았다. 1998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후 생명・평화・나눔을 기치로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했다. 2003년부터 전 세계 분쟁 지역과 가난의 현장을 발로 뛰어다니며 시를 쓰고 사진을 찍었다.

시인은 출옥 12년 만에 펴낸 304편이 실린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2010)를 냈다. 다시 12년 만에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2022)가 나왔다. 편집을 맡은 ‘김예슬’이 반가웠다. 2010. 3. 12. 고려대 안암 캠퍼스에 대자보가 붙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 둔다, 아니 거부한다〉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씨의 대학포기선언이었다. 분명 그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3천여 편의 육필원고 가운데 301편을 묶어 펴낸 528쪽의 양장본 시집은 제법 두꺼웠다. 기교와 장식이 전혀 없는 말끔한 시편들은 생생히 살아 있었다.

표지그림은 무수히 많은 별들이 떠있는 파란 하늘을 한 사람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별똥별 두 개가 사선을 그었다. 표제시 「너의 하늘을 보아」(524쪽)는 마지막 시였다. 전문이다.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 네가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 너의 하늘을 보아 //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 가만히 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 너의 하늘을 보아

 

두달 전이었다. 문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후배의 아내가 이른 나이에 죽었다. 이번에 얼굴을 못보면 기약이 한정 없이 늦추어질 것만 같았다. 다행히 날이 좋아 카페리호가 떴다. 나는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도대체 얼마 만인가. 초등학교 1년생이던 그의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다. 후배는 늦둥이로 아들을 두었다. 중학 3학년이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니 후배가 혼자 흐느끼고 있었다. 30년 세월이 흘러갔다. 그 시절 90년대 초반, 가장 가까웠던 다른 후배가 노동현장에서 행방불명되었다. 안기부의 불법연행이었다. 민가협을 통해 후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서울구치소에서 검취 과정이었다. 그를 통해 영등포구치소에 또다른 후배가 구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랬다, 사노맹이었다. 그는 출옥 후 호구지책으로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후배가 아내 영정 앞에서 굵은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는 영등포구치소의 후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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