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검은 표범 여인

대빈창 2023. 11. 23. 07:30

 

책이름 : 검은 표범 여인

지은이 : 문혜진

펴낸곳 : 민음사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해설 「어쩐지 록 스피릿! ╺ 당신의 ‘두 번째 인생’을 위한 포효 교본」에서 “저항의 에너지를 잃어버린 냉소와 체념의 시대에, 그녀의 그 모든 ‘이탈의 록’과 ‘야생의 경전’은 울부짖지 못하는 육식동물을 위한 포효교본”(123쪽)이라고 말했다. 나는 문학평론가의 두 번째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한겨레출판, 2018)에서 글을 먼저 만났다. 시집을 열면서 본문의 詩보다, 뒤편의 해설을 먼저 읽었다.

젊은 시절 한때, 나는 헤비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락에 깊게 몰입했었다. 시집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시인은 1998년 『문학사상』 시부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검은 표범 여인』은 두 번째 시집으로 제26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첫 시는 표제시였다.

 

낯선 여행지에서 어깨에 표범 문신을 한 소년을 따라가 하루 종일 뒹굴고 싶어 가장 추운 나라에서 가장 뜨거운 섹스를 나누다 프러시아의 스킨헤드에게 끌려가 두들겨 맞아도 좋겠어(13쪽)

 

시의 도입부다. 시편들은 서정성을 깔아뭉개는 도발성과 파격성이 압권이었다. 부 구분없이 46편이 실렸다. 야성의 냄새, 불온한 진술, 대담한 성적 묘사······. 야생의 짐승들이 부지기수로 출현했다. 표범, 북극흰올빼미, 악어, 코요테, 혹등고래, 피라냐, 백상아리, 호랑이, 가물치, 검독수리. 제목에 나타난 육식성 동물들이다. 군립도서관을 검색했다.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혜성의 냄새』(민음사, 2017)가 눈에 뜨였다. 놓친 고기가 커 보이는 법인가. 문학평론가가 ‘한국 시사 최초의 여성 로커’라고 평한 시인의 첫 시집 『질 나쁜 연애』(민음사, 2004)를 손에 넣어야겠다. 마지막은 나의 눈에 가장 도발적으로 읽혔던 「홍어」(16-17쪽)의 1․2․3․4연이다.

 

내 몸 한가운데 불멸의 아귀 / 그곳에 홍어가 산다 // 극렬한 쾌락의 절정 / 여체의 정점에 드리운 죽음의 냄새 // 오랜 세월 미식가들은 탐닉해 왔다 / 홍어의 삭은 살점에서 피어나는 오묘한 냄새 / 온 우주를 빨아들일 듯한 / 여인의 둔덕에 / 코를 박고 취하고 싶은 날 / 홍어를 찾는 것은 아닐까 // 해풍에 단단해진 살덩이 / 두엄 속에서 곰삭은 홍어의 살점을 씹는 순간 / 입 안 가득 퍼지는 / 젊은 과부의 아찔한 음부 냄새 / 코는 곤두서고 / 아랫도리가 아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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