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지은이 : 올리버 색스
옮긴이 : 김승욱
펴낸곳 : 알마
올리버 색스는 혼자서 노르웨이의 하르당게 피오르(빙식곡이 침식해 생긴 좁고 깊은 만)를 보트로 건넌 뒤 해발 1,800m의 등산을 시작했다. 정상까지 반 정도 올라왔을 때 가벼운 안개가 바위를 감싸 전망이 흐려졌다. 집채만한 바위를 돌아서다 길을 온통 점령한 덩치 큰 흰 황소와 마주쳤다. 공포에 질린 그는 걷기도 힘든 산길을 뛰어 내려오다 허공을 밟았다.
왼쪽다리 네갈래근 힘줄 파열 부상을 당했다. 그는 항상 우산을 휴대하는 특이한 버릇이 있었다. 우산으로 부목을 대고, 양팔로 노를 젓듯이 움직이면서 엉덩이로 미끄러져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2시간이 지나고 징검다리 개울을 천신만고 끝에 건넜다. 그의 움직임은 음악의 리듬 덕분에 조화를 가져왔다. 올라갈 때 1시간 조금 넘게 걸렸던 길이 다친 몸으로 내려오면서 7시간이 걸렸다. 저녁 7시가 되자 해가 사라졌다. 사위가 어둠에 잠겨들기 시작했다.
그때 기적과 은총처럼 구원자가 나타났다. 순록 사냥을 나온 부자父子가 근처에 캠프를 쳤다. 그들은 덤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순록의 움직임으로 알고 밖으로 나왔다. 시골 작은 병원에서 구급차로 여섯 시간 산길을 달려 베르벤까지 이동했다. 런던공항에서 다시 구급차로 큰 병원으로 이동, 전신마취 대수술을 받고 이틀 만에 의식을 찾았다. 근육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깁스한 다리가 꺾여 침대 밖으로 늘어진 것을 발견한 간호사가 기겁을 해 병실로 뛰어왔다.
그는 15년 전의 사건을 떠올렸다. 한 해의 마지막 축제 분위기. 환자는 섬뜩한 유머 감각의 간호사가 해부실에서 다리 한 짝을 가져와 침대 이불 속에 넣어 두었다고 생각했다. 환자는 그 다리를 침대 밖으로 던져버렸는데, 그의 몸이 그 뒤를 따라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신체이미지body-image 또는 신체자아body-ego 장애였다. 색스는 환자와 똑같은 처지가 되었고, 의식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상을 입은 지 2주가 지나갔다. 다리의 신경과 근육에 섬광이 지나가는 현상은 신경학적 회복의 징후이자 징표였다. 친구가 가져다준 녹음기와 카세트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콘체르트를 듣고 또 들었다. 수술 후 14일째 다리에서 생기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음악이 들려오던 순간과 일치했다. 병실을 옮겼다. 색스의 시각적인 공간은 20일 동안 지내던 창문 없는 병실과 똑같은 크기였다.
햄스테드에 있는 켄우드 재활원으로 옮겼다. 보름달을 보고, 사고를 당한 지 음력으로 한 달이 지난 것을 알았다. 6주 만에 검사를 받고 깁스를 풀었다. 무릎을 사용 못하는 어색한 걸음은 W. R. 박사의 의도적인 수영장 도발 사건으로 정상으로 돌아왔다. 소련의 신경학자 루시아는 이렇게 격려했다. “이 경험의 특징을 온전히 이끌어내서 남들에게 보여주려면 원래 직업이 의사이거나 신경심리학자인 환자가 필요”(240쪽)하다고. 올리버 색스는 사고를 당한 지 10년(1984년)만에 원고를 완성했다.
내가 일곱 권 째 잡은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1933-2015)의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는 그가 실제로 경험한 병상기록이었다. 책은 부상과 회복 과정의 신경심리학적 현상, 의사와 환자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의 복잡성, 자신이 환자로서 경험한 증상의 연구, 환자들에게 직접 적용하는 문제 등을 되새겼다. 뇌신경학자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지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기계적이고 ‘고전적인’ 모델에서 완전히 개인적이고 자기창조적인 뇌와 정신의 모델로 크게 도약한 것은 이제 신경학의 몫”이라고. 이 변화는 400년 전 갈릴레오적 사고가 물리학에 비친 혁명적 변화에 버금가는 중대한 혁명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