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인생의 역사
지은이 : 신형철
펴낸곳 : 난다
이로써 문학평론가가 내놓은 다섯 권의 책이 모두 나의 손을 거쳐 갔다. 표제를 『인생의 역사』라고 붙인 연유를 서문 「내가 겪은 시를 엮으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는 행行과 연聯으로 이루어진다. 걸어갈 행, 이어질 연. 글자들이 옆으로 걸어가면서行 아래로 쌓여가는 일聯······. 걸어가면서 쌓여가는 건 인생이기도 하니까.”(7쪽) 눈에 띄는 표지는 한국미술사의 대표화가 박서보 화백의 〈묘법 No.130119〉였다.
부제가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 - 까지로. 총 5부에 나누어 동서고금의 詩 25편을 통해 삶을 들여다본 에세이 형식의 ‘신형철의 시화詩話’였다. 저자가 직접 번역한 아홉 편의 외국시를 실었다. 책을 여는 프롤로그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는 민주화를 위해 사람들이 제 목숨을 던지거나 미래를 포기하며 싸우던 시대에 읽혔다.
1부 ‘고통의 각’은 ‘나는 내 뜻대로 안된다. 너도 내 뜻대로 안 된다. 그러므로 인생은 뜻대로 안 된다’는 백수광부白首狂夫 아내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에서, 「욥기」, 30장 20-31절, 에밀리 디킨슨의 두 편의 시 「내 삶은 폐쇄되기 전에 두 번 닫혔다」, 「크나큰 고통을 겪고 나면, 형식적인 감정들이 온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강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경험한 고통의 한 유형 최승자의 「20년 후에, 지芝에게」까지.
2부 ‘사랑의 면’은 한 인간이 후대의 인류에게 남긴 아름다운 선물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73」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中 제2비가」, 이영광의 「사랑의 발명」, 나희덕의 「허공 한줌」, 세상 혹은 자기와 싸우다 패배하여 자책과 회한의 날을 보내는 이에게 세상에 당신의 자리가 분명히 있다고 말하는 메리 올리버의 「기러기」.
3부 ‘죽음의 점’은 자기혐오에 가까운 문장들을 적은 말년의 김시습 「자화상에 부쳐自寫眞贊」에서, W. H. 오든의 「장례식 블루스」, 황동규의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윌리스 스티븐슨의 「아이스크림의 황제」, 아주 독특하고 아름다운 죽음의 詩 한강의 「서시」까지.
4부 ‘역사의 선’은 우리 각자가 사랑하는 사람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평화와 함께 지켜내는 일 아르키스콜로의 「방패 때문에」, 사포의 「가장 아름다운 것」에서, 윤동주의 「사랑스런 추억」, 황지우의 「나는 너다 44」, 밥 딜런의 노래 〈시대는 변하고 있다〉, 쉬운 말을 실천-성취해내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절하게 체험해야 하는 이 나라 시민의 불행, 신동엽의 「산문시 1」까지.
5부 ‘인생의 원’은 생을 싫어할 자격이 있는 만큼 강한 사람의 말이기 때문에 오히려 여운이 따뜻한 이성복의 「생에 대한 각서」에서, 레이번드 카버의 「발사체-무라카미 하루키를 위하여」, 김수영의 「봄밤」, 필립 라킨의 「나날들」, 우리가 우리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축하려 할 때 범하게 되는 자기기만self-deception에 대한 논평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까지.
부록 ‘반목의 묘’는 1989년 이후로 30년 동안 ‘윤상덕후’였던 문학평론가는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어떤 것을 그의 음악에서 배웠다. 누구도 절망할 권리가 없다고 외치는 이시이 유야의 영화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의 막무가내로 노래 부르는 버스커. 우리가 자격이 없어서 국가國歌로 사용하기 과분한 〈임을 위한 행진곡〉. 역사적 시간성과 결별하고 신화적 시간성에 입문한 최승자의 90년대 시. 문학 고유의 인식적 가치에 대한 신화와 추구 황동규의 시.
책을 닫는 에필로그의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는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 문학은 그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답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 외에 거의 모든 시간을 문학작품을 읽고 글을 쓰는 데 사용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 문학은 그야말로 ‘직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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