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지은이 : 이시영
펴낸곳 : 창비
시인 이시영(李時英, 1949- )은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약관의 나이에 등단했다. 시력詩歷 50년을 훌쩍 넘겼다. 시인은 현재 열네 번째 시집 『하동』(창비, 2017)까지 펴냈다.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창비, 2012)는 이순耳順을 넘긴 시인의 열두 번째 시집이었다. 나는 시인의 열한, 열두 번째 시집을 연달아 잡았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106편이 실렸다. 표사는 문학평론가 염무웅, 해설은 문학평론가 이숭원의 「수식어의 미학, 구체성의 시학」이다.
그동안 다양하고 개성적인 인물시人物詩를 선보였던 시인답게 이번 시집에도 몇 편의 시가 눈길을 끌었다. 내 눈에 뜨인 인물을 거칠게 나열하면 문익환 목사, 소설가 강병철․송기원, 시인 도종환․서정주․신현정․김남주․김지하, 무위당 장일순, 권정생 선생,······. 시인은 말했다. “나는 시가 아니라도 좋으니 이런 작업을 통해서 감추어진 세계의 진실을 드러내는 게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난 시대의 ‘참여시인’이란 명칭이 좋다.”
어떤 가공이나 감정의 개입 없이 날 것의 사실 그대로를 담담하게 전하는 신문기사와 책의 내용이 그대로 인용된 시사시時事詩는 여전했다. 철거민 다섯 명과 진압 경찰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의 표제작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서 살수차 두 대의 무지막지한 진압을 막아 낸 유모차를 끌고나온 젊은 엄마 「직진」, 구제역으로 수백만 마리의 소를 살처분하는 현장의 송아지를 가랑이 사이로 극구 숨기려는 어미소의 눈물겨운 모정 「고급사료」, 다국적 기업의 하루 16시간의 노동착취에 시달리는 인도 어린이의 노예노동 「어린이노동」, 민주화 시위대를 향한 인간 사냥을 자행한 리비아의 카다피 「2011년 2월 24일, 리비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인 무차별 학살에 브라보!를 외치며 환호하는 전쟁 현장을 구경나온 이스라엘인 「아, 이런 시는 제발 그만 쓰고 싶다」,
몇 편의 짧은 시편들은 선시禪詩처럼 깊은 여운을 드리웠다. 이순을 넘긴 시인의 살아온 삶에 대한 성찰과 회한이 담긴 시편들로 단국대 천안캠퍼스 연구실에서 내려다보는 안서호 오리들의 유영 「저녁의 몽상」, 섬진강 용소에 빠져 죽어가던 어린 시인을 구하고 씨익 웃으며 내려다보던 육촌형 「이순의 아침」, 치매 걸린 어머니의 손목을 문고리에 묶고 출근하는 시인 「어머니 생각」은 시편을 읽어나가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마지막은 「최후진술」(64쪽)의 전문이다.
판사가 최후진술을 하라고 하자 피고석에서 수갑을 찬 채 엉거주춤 일어난 늙수그레한 대학생 김남주가 법복을 입고 안경을 쓴 갸름한 얼굴의 판사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한마디로 좆돼부렀습니다!”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고 법정 안이 잠시 소란했다. 1973년 12월 28일 광주지법, 지하신문 『고발』지 결심공판에서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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