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모든 것은 빛난다

대빈창 2024. 1. 9. 07:30

 

책이름 : 모든 것은 빛난다

지은이 : 휴버트 드레이퍼스․숀 켈리

옮긴이 : 김동규

펴낸곳 : 사월의책

 

낯선 저자들은 철학자였다. 휴버트 드레이퍼스는 UC 버클리 철학교수, 숀 켈리는 하버드대 철학교수였다. 책은 ‘무의미’라는 현대철학의 화두를 성찰한 문학에세이였다. 저자들이 던지는 질문은 한 가지였다. 우리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찬양하는 ‘개인의 자율성’,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자아’는 우리 삶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가? 현대인이 겪는 허무와 우울의 시대적 병증은 ‘자율적 존재로서의 인간’이라는 그릇된 신념이 최종적으로 봉착한 지점이라고 진단했다.

책은 7장으로 구성되었다. 각 장의 소제목은 옮긴이가 추가한 것이다. 원서는 단락으로 구분지어 졌다. 책에 실린 도판들은 원서에 없다. 1장 ‘선택의 짐’은 2007년 1월 2일 맨해튼 브로드웨이 137번가 지하철 승강장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쉰 살의 건설노동자 웨슬리 오트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1호 열차의 전조등이 나타났지만 선로에 뛰어들었다. 비틀거리며 걷다가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홀로피터(일면식도 없는)를 구하려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 앞에 닥친 모든 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처해졌다.

2장 ‘우리 시대의 허무주의’는 실존적 상황을 가장 극한까지 감당하려 했던 인물로, 자살한 미국 천재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가 등장한다. 반대편에 ‘의미의 창조자’라는 짐을 개인이 지는 것은 부당하다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있었다. 3장 ‘신들로 가득한 세상’은 현대적 실존 상황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시대를 살아갔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인물들을 등장시켰다. 4장 ‘유일신의 등장’은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복수와 분노가 지배적이었던 고대의 원시적 정념들이 공동체의 안녕을 추구하는 법질서로 수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개인의 욕망을 신의 사랑과 일치시키려는 한 인간의 내면적 투쟁 기록이었다.

5장 ‘자율성의 매력과 위험’은 단테의 『신곡』에서 인간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실존 상황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을 악마적 특성으로 보았다. 6장 ‘광신주의와 다신주의’는 19세기 상상력에 정점을 찍은 미국작가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을 ‘의미의 무한한 원천’의 자리를 두고 개인과 신이 벌이는 장엄한 투쟁으로 해석했다. 7장 ‘우리 시대의 가치 있는 삶’에서 우리 존재의 성스러움이란 문화적 실천(Praxis)들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데서 오고, 이것이 허무주의와 무기력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다.

고전 철학서와 문학작품들의 빛 속에서, 자기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책 속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광포한 감정의 선동이나 차디찬 이성의 명령 어느 한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지키는 기술을 연마함으로써 진정 빛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표제 『모든 것은 빛난다(All Things Shining)는 에필로그 「빛나는 모든 것들」에서 따왔다. 떠나는 두 제자에게 늙고 지혜로운 스승은 말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빛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면, 너희들의 인생은 복될 것이다.” 각자의 길을 나섰던 두 제자는 여러 해가 지난 후 우연히 만났다. 첫 번째 제자가 말했다. “세상의 많은 빛나는 것들을 보았지만 슬프고 실망스런 것들 역시 많이 보았네. 모든 것들이 빛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어.” 두 번째 제자가 말했다. “모든 것들이 빛나는 것은 아니라네. 하지만 더없이 빛난 것들은 존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