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대빈창 2024. 1. 4. 07:30

 

책이름 :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지은이 : 강신주

펴낸곳 : 동녘

 

대중철학자 강신주(姜信珠,  1967- )의 책을 오랜만에 잡았다. 열두 권 째였다. 철학자는 그동안 어떤 권위에도 억압받지 않는 자유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인문학의 가장 강력한 힘임을 갈파했다. 1004년에 완성된 도원(道原, ?-?)스님의 〈전등록傳燈錄〉은 1,700여개, 스승 설두 중현(雪竇 重顯, 980-1052)에서 제자 원오 극근(圓梧 克勤, 1063-1135)이 완성한 〈벽암록碧巖錄〉은 100개를 선별한 화두모음집이다.

1228년에 나온 편저자 무문 혜개(無門 慧開, 1183-1260)의 〈무문관無門關〉은 48개의 화두를 선별했다. 책의 부제는 ‘무문관, 나와 마주 서는 48개의 질문’이다. ‘화두’란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나 역설로 가득 찬 난제를 가리켰다. 철학자는 화두에 담긴 불교철학의 핵심에 다가서기 위해 동서양 철학을 종횡무진으로, 선불교의 인문정신을 길어 올렸다. ‘문이 없는 관문’ 무문관無門關으로 독자를 이끌며 48개의 관문을 통과했다. 48개의 화두에서 나에게 낯익은 화두는 고작 7개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조주 화상은 답했다. “없다!”-제1칙 조주구자趙州拘子

영취산 집회에서 석가모니가 대중들에게 꽃을 들어 보여주었다. 오직 가섭만이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석가모니가 말했다. “올바른 법을 보는 안목, 열반에 이르는 미묘한 마음, 실상實相에 상相이 없다는 미묘한 가르침. 이것은 문자로 표현할 수 없어 별도로 전할 수밖에 없다. 가섭에게 맡기겠다.”-제6칙 세존염화世尊拈花

어느 스님이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묻자, 운문 스님은 “마른 똥 막대기”라고 말했다.-제21칙 운문시궐雲門屎橛

사찰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고 두 스님이 논쟁을 했다. 한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라고 말하고, 다른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라고 주장했다. 논쟁만 오갈 뿐 해결될 기미가 없었다. 이때 육조 혜능이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을 뿐입니다.”-제29칙 비풍비번非風非幡

어느 스님이 “무엇이 달마 대사가 서쪽에서 온 뜻인가요?라고 묻자, 조주 스님이 대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제37칙 정전백수庭前栢樹

달마가 벽을 향해 참선하고 있을 때, 혜가가 퍼붓는 눈발 속에서 자기 팔을 자르고 말했다. “제 마음이 아직 편하지 않습니다. 부디 스승께서 제 마음을 편하게 해 주십시오.” 달마가 말했다. “네 마음을 가지고 와라. 그러면 너를 위해 네 마음을 편하게 해 주겠다.”-제41칙 달마안심達磨安心

석상 화상이 말했다. “100척이나 되는 대나무 꼭대기에서 어떻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겠는가!”-제46칙 간두진보竿頭進步

 

철학자는 말했다. “초월종교인 기독교와 달리 불교는 내재적 사유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을 조연으로 만들지만, 불교는 인간을 주연으로 긍정하기 때문이지요. ·····. 아마 바쿠닌이었다면 교회나 성당에 들어가서 십자가를 보고 녹슨 쇳덩어리라고 이야기했을지도 모릅니다. 숭배대상이 파괴되어야, 우리는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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