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낫이라는 칼
지은이 : 김기택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어이, 신문― / 외팔에 신문뭉치를 들고 껑충껑충 / 외다리 사내가 뛰어간다. / 사람들은 모두 걸음을 멈추고 / 불안하고 빠른 뜀박질을 쳐다본다. / 외다리에 튼튼한 대칭축을 박고 / 외다리를 박차며 달리는 / 허리와 엉덩이. / 외팔의 대각선에서 팔처럼 움직이는 / 머리와 모가지. / 기울어질 듯 바로 서는 몸. / 쓰러질 듯 일어서 힘이 붙는 속도. / 헉헉거리는 신문을 하얀 손이 집어간다. / 동전 하나가 땀에 젖은 손바닥에 떨어진다. / 어이, 신문― / 다시 흔들리는 외팔, 껑충껑충 뛰는 외다리. / 땀흘리며 쫒아가는 비대칭의 균형.
시집 『사무원』(창비, 1999)에 실린 「대칭 2」의 전문이다. 시인을 나의 뇌리에 깊게 각인시킨 詩였다.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대가 최민식 선생(1928 ~ 2013)의 별세 소식을 듣고, 『HUMAN』(1957-2006, 최민식 사진 50년 대표선집)을 손에 넣었다. 외팔-외다리 신문팔이 사진이 아프게 눈을 찔렀다. 그리고 어디선가 우연히 시를 만났다.
이후 나는 『소』(문학과지성사, 2005), 『울음소리만 놔두고 개는 어디로 갔나』(현대문학, 2018), 그리고 네 번째로 만난 시집은 2022년에 출간된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이었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시인은 “탁월한 시적 묘사로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주었다고 평가받았다. 4부에 나뉘어 66편이 실렸고, 해설은 송승환(시인․문학평론가)의 「사물주의자의 틈」 이었다.
해설은 '김기택 시인은 사물주의자이다. 그의 시에서 사물은 일상 세계의 도처에서 출현하며 일상의 삶 자체를 개진한다.'로 시작되었다. 시인은 지금까지 '사물에 의한, 사물을 위한, 사물의 편에서 올곧이 사물의 시를 써온 사물주의자'(130쪽)이다. 표제 『낫이라는 칼』의 詩는 없었다. 다만 ‘팔처럼 뭔가를 껴안으려는 존재’로 묘사한 「낫」(25쪽)이 눈에 뜨였다. 마지막은 「혓바늘」(75쪽)의 전문이다.
말할 때마다 따끔따끔하다 / 밥알이 구를 때마다 혀가 찔린다 / 물렁물렁하고 뭉툭한 혓바닥에 찔린다 / 아이스크림을 핥던 촉촉한 탄력에 찔린다 // 혀끝이 이빨 사이를 뒤지고 입안을 더듬고 / 혀가 만들어낸 말들을 다 뒤져도 / 바늘은 찾을 수 없고 / 말랑말랑한 것밖에는 없어서 // 찌르는 것이 없는데도 찔린다 / 찔리기도 전에 찔린다 / 찔리는지 모르고 있다가 느닷없이 소스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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