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킹―거리의 이야기
지은이 : 존 버거
옮긴이 : 김현우
펴낸곳 : 열화당
책은 전통적․아카데미적 미술 감상법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한 『다른 방식으로 보기』, 직간접적으로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을 치밀한 시각적 산문을 통해 마치 사진을 찍듯이 생생하게 그려낸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에 이어 세 번째 책이었다.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는 미술평론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널리 알려진 르네상스적 인간이었다.
『킹―거리의 이야기』는 『G』로 1972년 부커상을 수상한 존 버거의, 내가 잡은 첫 소설이었다. 작품은 ‘앞으로 킹이라고 부르마’(30쪽) 비코가 이름 붙여 준 『킹king』(1999)이라는 이름의 개가 바라본 유럽의 어느 도시 근교 노숙자들의 삶이었다. 주인공 킹은 오래전 공항 근처 난민수용소 경비견이었다. M.1000 고속도로가 지나는 생 발레리는 예전에 쓰레기 하치장이었다. 이곳에 각자의 사연을 가슴에 안고 모여든 사람들 바카와 비코(킹과 함께 사는), 잭(터줏대감), 마르첼로, 애니, 요아킴, 말락, 리베르토, 솔, 대니, 코리나, 뤼크(자살), 알폰소 등이 쓰레기를 뒤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의 하루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렸다.
소설은 7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부터 6장까지는 새벽부터 저녁까지의 시간대가 소제목이었고, 마지막 장의 첫 문장은 ‘얼마나 늦은 시간인지 모르겠다.’(169쪽)로 시작되었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온 물건들로 방을 치장하는 노숙인들의 삶을, 작가는 역설적으로 서정적인 문장으로 그려냈다. 몇 구절이 인상 깊게 눈에 들어왔다.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오는 약자들에게 강자들이 느끼는 증오는 인간만의 특징이다. 동물들 사이에선 그런 일이 없다.(28쪽)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부터 산만해진다.(60쪽)
나는 잭 같은 사람의 용기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앙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감지할수록 그런 사람은 더 차분해진다.(178쪽)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가 서로 도우려는 사람들의 성향을 일컫는 말이라는 문장을 접하며, 이 땅의 사회과학도서 출판사 《후마니타스》를 떠올렸다. 7장은 아무 경고도 없이 생 발레리에 들이닥친 철거반의 강제철거 폭력을 그렸다. 노숙자들의 거처를 무자비하게 짓밟는 무한궤도. 냉정한 지휘관의 확성기, 전경들의 자동소총과 최루가스. 가진 자들에게 천국, 가난한 자들에게 지옥인 이 땅의 '용산참사'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옮긴이는 해설 「숨기고 싶은 실수를 인정하는, 희망」에서 말했다. “존 버거는 그런 체제의 강압에 정면으로 맞서, 가장 서정적인 문장으로 체제가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부분을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다.”(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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