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대빈창 2024. 3. 21. 07:00

 

책이름 :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

지은이 : 제임스 R. 해거티

옮긴이 : 정유선

펴낸곳 : 인플루엔셜

 

제임스 R. 해거티(James R. Hagerty, 1956- )는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의 부고 전문 기자다. 그는 세상을 떠난 이들의 부고 기사만을 전담해서 썼다. 부고 기사의 주인공은 대중에게 유명인뿐만 아니라 악명 높은 사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까지 다양했다. 지난 7년간 800명의 부고를 작성했다. 이 땅에서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의 부음 기사는 빈소, 발인 날짜, 유족명만 간단히 알리지만, 서구 신문은 부고obituary 지면을 마련하여 망자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전했다. 미국 최고의 신문들에 실리는 부고는 다양한 인생 이야기를 전해주는 생동감 넘치는 ‘미니 전기’로 발전했다.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의 원제는 『YOURS TRULY』로 ‘그럼 이만 안녕히 계세요’가 된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 남은 이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였다. 책의 구성은 4장으로 구분하여 28편의 글을 담았다. 저자는 부고 전문기자로 매일 1-2시간씩 전 세계의 사망뉴스를 찾아보며 누군가의 부고를 작성했다. 책은 자신의 부고를 쓰는 법, 삶의 기록의 중요성, 부친의 부고를 쓰면서 생긴 에피소드, 부고의 짧은 역사, 작은 영웅 이야기 등을 소개했다. 책에 실린 수많은 부고 예시에서 「디테일이 살아 있는 인생 이야기의 좋은 예」에 등장한 인물은,

세계 최대의 세무 서비스 기업 H&R 블록의 헨리 블로흐, 20년 넘게 재앙의 현장을 누빈 다비다 코디, 내셔널 캐시 레지스터의 최고 경영자 윌리엄 S. 앤더슨. 레스링팀에 합류하기 위해 무리한 감량으로 고생한 켄 유니콘, 프렌들리스 아이스크림․페밀리 레스토랑 체인점 창업자 프레스들리 블레이크, 재단사 맞춤 턱시도 네 벌을 소유한 전 뉴욕시장 데이비드 딘킨스, 두부 아이스크림 ‘포푸티’ 개발자 데이비드 민츠, 스콜라스틱 출판사 전 최고경영자 리처드 로빈슨, @ 기호의 최초 사용자 레이 톰린슨, 부활절 의식에서 모의 십자가 형을 당한 서배스천 호들리.

저자의 부고 기사 작성 원칙은 삶의 이력을 요약하면서도 망자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이야깃거리를 풍성하게 담는 것이다. 저자가 권하는 훌륭한 부고는, ‘헌사’를 넣지 말아야 한다. 너무 뻔해서 흥미가 떨어지고, 대개 한없이 관대해서 믿음이 덜 가기 때문이다. 그런 문구는 지면을 허비하고 독자를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인의 실수와 약점을 기록해야 한다. 망자의 실수와 유쾌한 순간의 기록은 그가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다. 그것들은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자신의 소중한 추억이나 성취를 놓칠 수 있으니 생전에 적접 글을 남겨야 한다. 그 누구도 나보다 잘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뜨인 부고는 「작은 영웅들의 부고」에 실린 물불 가리지 않는 헌신으로 성공한 이민자 이희숙의 이야기였다. 부고는 2020년 8월 27일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800단어 분량의 기사였다. 서울에서 태어난 망자는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10대 때부터 식당종업원으로 일했다. 1989년 캘리포니아에 뿌리를 내린 그녀는 비법 양념으로 조리한 순두부찌개를 파는 북창동 순두부BCD Tofu House 체인을 창업했다. 마침내 그녀의 식당 앞에 길게 줄이 이어졌다. “맵고 붉은 소뼈 육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두부찌개. 이희숙의 레시피는 남편에게도 비밀이었다. 그의 요리는 미국에서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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