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측광

대빈창 2024. 3. 28. 07:00

 

책이름 : 측광

지은이 : 채길우

펴낸곳 : 창비

 

군립도서관의 도서 대여기간은 3주였다. 뭍에 나가는 출타를 도서반납 일정에 맞추었다. 군립도서관은 세 군데였다. 나는 두 달에 한번 꼴로 이발을 했다. 단골이발소가 있는 면소재지에 군립도서관이 있었다. 이발을 하는 날이면 면소재지 군립도서관의 책을 대여했다. 책을 빌릴 때마다 시집을 한권씩 포함시켰다. 가장 최근에 출간된 시집을 대여목록에 올렸다.

채길우蔡佶佑,시인이 낯설다. 2013년 『실천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세기 마지막 해 〈실천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을 응모했다. 그해 시부문 당선자는 이안이었고, 소설 부분은 당선작이 없었다. 소설부분 심사위원은 현기영이었다. 나의 문청시절은 그렇게 끝이 났고, 이날까지 작가 현기영의 소설을 즐겨 잡고 있다.

첫 시집 『매듭법』(문학동네, 2020)에 이어, 『측광』은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었다. 해설․발문이 없고, 부 구분 없이 44편이 실렸다. 시인 유병록은 추천사에서 말했다. “지켜내는 일은 때로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합니다. 그러나 끝내 실패에 도달하리라는 예감 속에서도 지켜내는 일은 계속됩니다.” 시인은 삶의 고단한 풍경 속에서 작고 미약한 존재들의 생활과 감정을 기록했다.

 

돼지를 팔려는 고산지대 전통의상 입은 아낙, 의식 잃은 아이 욕창을 닦아주는 숙모, 밤새 또래들과 술 마시다 돌아온 아이, 고양이에게 입은 상처로 동기들에 쪼여 죽은 병아리, 문맹 외할머니의 글을 배우려는 수십 번의 흔적, 바닥에 웅크린 절하는 비구, 손안의 작은 조약돌을 움켜쥔 허름하고 외로운 소년, 등 긁으려 낡고 해진 브래지어 호크를 푸는 할머니, 남쪽의 외딴섬 쇠락한 폐교, 세밑 한파 할머니가 죽어 깨우지 못해 늦잠 잔 지하방 소녀, 화장실 변기에 조산아를 낳은 작은 여학생, 스무살이 지나도 말을 배우지 못한 아이, 폭염 속 견습공들, 전철에서 졸다 비닐봉지 자두를 흐트러트린 할머니, 비닐하우스에 갇혀 출구를 못 찾는 오목눈이.

 

표제를 단 詩를, 아니 구절조차 찾을 수 없었다. 「자유」(92-93쪽) 1연 4행의 ‘기울어진 햇살만큼 반짝여’가 내가 찾아 낸 ‘측광’이었다. 시인은 온기어린 순간을 측면에서 들어오는 빛처럼 특유의 시어로 포착해 냈을 것이다. 시편의 제목들은 하나같이 간결했다. 차례는 마흔네개의 짤막한 단어들이 나래비를 섰다.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 시 「간병」(8쪽)의 전문이다.

 

새하얗고 너른 침상 위로 / 너무 일찍 떨어진 감꽃에 / 어린 벌이 찾아와 있다. // 싱그러운 초록과 비린 향기가 / 미처 식지 못한 꽃잎들을 / 벌이 허리 굽혀 어르고 매만진다. // 창백한 꽃의 얼굴에 더 가까이 벌은 / 설익은 꿀이 말라붙은 입술을 핥고 / 푸석해진 화분을 살결에 펴 발라준다. // 꽃은 작고 벌은 서툴다. 하지만 / 꽃은 다 시들지 않았고 / 벌은 좀처럼 날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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