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어디서 살 것인가

대빈창 2024. 3. 27. 07:00

 

책이름 : 어디서 살 것인가

지은이 : 유현준

펴낸곳 : 을유문화사

 

뒤늦게 접하게 된 건축가 유현준은 한국에서 도시와 건축 분야의 제1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그의 책들은 인문학․사회과학 분야에서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어디서 살 것인가』는 나에게 건축가의 두 번째 책이었다. 도시와 공간을 바라보는, 쉽고 재미있게 건축 이야기를 풀어 낸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2탄이었다. 

부제는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로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도시를 어떻게 바꿔 나갈지를 물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은 추천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고, 첨단과학과 전통이 맞물려 있다.” 12장에 나뉘어 실린 118편의 글들은 짧아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표지그림 〈고층 건축의 시대, 미국 뉴욕의 모습〉을 비롯한 이미지 49점이 실려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1장 ‘양계장에서는 독수리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나라 학교 건축은 교도소 혹은 연병장과 막사의 구성이다. 12년 동안 이런 공간에서 생활한 아이들은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이 같은 반 친구를 왕따시키고, 폭력화되는 것은 학교 공간이 교도소와 비슷해서다. 학생들에게 생겨나는 병리현상은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비슷하다. 공평과 평등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똑같은 공간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체주의적 학교 건축물을 양산했다. 평등과 전체주의는 종이 한 장 차이다.

2장 ‘밥상머리 사옥과 라디오 스타’ 우리나라는 전 국민의 60퍼센트가 똑같은 아파트에서 산다. 획일화된 보편적인 삶의 공간은 어떤 천재들에게 창의성을 죽이는 공간이다. 3장 ‘힙합 가수가 후드티를 입는 이유’ 우리가 사는 현대사회는 공간을 즐기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집값이든 월세든 카페의 커피값이든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카페를 보유한 이유는 우리 국민들이 앉아서 쉴 곳이 없기 때문이다. 힙합 가수들이 후드티를 많이 입는 것은 시선을 차단해서라도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려는 노력이다.

4장 ‘쇼핑몰에는 왜 멀티플렉스 극장이 있는가’ 쇼핑몰에 대형 서점이나 멀티플렉스 극장이 필요한 것은 변화하는 자연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에서 외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현대인은 외부 공간을 경험하기 위해 골목길 상권으로 이동한다. 5장 ‘더하기와 빼기, 건축의 오묘한 방정식’ 런던의 화력발전소는 데이트 모던 미술관, 파리의 기능을 못하는 기차역은 오르세 미술관으로 업사이클링되었다.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는 버려진 고가철도였다. 보스턴 도심을 관통하는 93번 고속도로의 철거된 철골 재료들은 다른 지역 주택의 기둥과 보로 활용되었다.

6장 ‘파라오와 진시황제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현시대의 모아이 석상은 쓸데없이 크게 지은 고층건물일 것이다. 두바이는 세계 최고층 건물인 부르즈 할리파 완성과 동시에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과거에는 한 국가의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피라미드를 건축했다면 지금은 최첨단 양자역학 기술과 자본을 동원해 원자폭탄이나 전투기를 만든다. 7장 ‘현대인이 SNS를 많이 하는 이유’ 세계 건축사에 한국의 상가교회처럼 작은 규모의 종교 시설이 상업공간에 침투한 경우는 없다. 많은 인구가 사는 아파트를 배후에 가진 상가교회는 양적으로 급성장했다. 현대에는 시선의 집중을 받아 권력을 창출하는 방법이 건축 외에 TV․영화 같은 미디어를 이용하는 것이다.

8장 ‘위기와 발명이 만든 도시’ 미국 전역에 철도를 깐 밴더필트, 휘발유를 개발한 록펠러, 강철을 개발한 카네기, 엘리베이터를 개발한 오티스, 전기발전소를 설립한 J. P. 모건, 전구를 개발한 에디슨, 자동차 조립식 생산라인을 구축한 헨리 포드. 기원전 5천 년 전 해수면 상승이 멈추면서 문명의 축적이 이루어지고 마을이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9장 ‘서울의 얼굴’ 우리가 수십 년 된 의미 있는 건축물을 계속 부수기만 한다면 우리나라의 근대 역사는 건축적으로 공백이 될 것이다. 뉴욕의 소호․첼시 같은 공장지대 건물은 기둥간격이 넓고 천장고가 높아 다른 용도로 리모델링하는 용도변경이 쉽다. 서울역 고가공원은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를 대놓고 따라한 것이다.

10장 ‘우리 도시가 더 좋아지려면’ 강북의 서울숲과 강남 로데오 거리를 연결하는 보행자 다리가 건설된다면 양쪽에 다좋은 시너지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새롭게 재건축되는 대형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거대한 담장은 소통을 막는 것으로 갈등의 씨앗이 된다. 11장 ‘포켓몬고와 도시의 미래’ 근대에 보일러 파이프를 통해 온수를 위층으로 올릴 수 있게 되면서 고층건물을 짓게 되었다. 공유경제는 짧은 시간 단위로 누구나 제품이나 공간을 소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기술은 바뀌어도 인간의 유전적 본능은 빨리 바뀌지 않아 속도의 차이에 의한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12장 ‘공간의 발견’ 모든 건축요소의 근본 원리는 다 자연에서 온다. 자연이나 건축이나 둘 다 ‘중력’을 이겨내기 위해 만들어진다. 건축이 다른 예술과 다른 큰 차이점은 가장 근본적인 자연법칙인 ‘중력’을 이겨내려는 인간의 노력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건축가는 말했다. “도시와 건축의 진화는 주어진 기후 속에서 문제 해결을 하는 지능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환경의 변화는 삶의 형식을 바꾼다. 바뀐 경제, 정치 구조는 새로운 건축과 도시를 만든다. 새롭게 만들어진 건축 환경과 도시 환경은 다시 사람을 바꾼다. 바뀐 사람은 다시 정치 시스템을 바꾸고 사회조직을 바꾼다.”(249-250쪽)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47) 2024.03.29
측광  (50) 2024.03.28
깻잎 투쟁기  (46) 2024.03.26
다윈의 미완성 교향곡  (3) 2024.03.25
나는 지금 이곳이 아니다  (63) 2024.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