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지은이 : 서현
펴낸곳 : 효형출판
책은 개정 3판까지 나왔고 스테디셀러였다. 내가 잡은 책은 1998년 초판본이다. 건축을 알고 책을 잡은 것이 아니다.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라고 할까. 독서이력에서 그 시절, 나는 출판사를 보고 책을 골랐다. 〈학고재〉와〈효형출판〉 이었다. 25년 만에 책술에 앉은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독서대에 올렸다.『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의 차례는 ‖책을 내면서‖, ‖시작하는 말‖, 본문은 5장에 나뉘어 71편을 글을 담았다. ‖맺는 말‖, ‖부록‖으로, 현대건축의 해부 - 보, 공조空調, 팬 코일 유니트Fan coil unit, 덕트duct, 스팬드널spandrel, 창window, 방풍실, 계단, 엘리베이터, 연결송수구. 전통건축의 분류 - 팔작지붕, 맞배지붕, 우진각지붕, 모임지붕, 공포, 주심포식, 다포식, 배흘림기둥, 민흘림기둥, 보, 도리. 출연한 건축물은 〈갤러리 빙〉에서 〈LG 트윈타워〉까지 58점의 도판이 붙었다.
책은 건축가가 건축을 설계하고 짓는 건축행위 자체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했다. 글들은 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따라 점점 공간이 확장되었다. 벽돌, 돌, 콘크리트, 유리, 철, 나무에 따라 건물의 느낌이 달라지는 모습을 도판과 함께 보여 주었다. 나의 리뷰는 이 땅의 건축문화에 대한 건축가의 비판적 시선을 짧게 요약했다.
우리 주위 어디서나 보이는 붉은 네온 십자가는 동네 조명가게와 철공소의 무딘 감각 외에 초월적인 감수성의 자극을 기대하기 어렵다. ‘동양 최대’, ‘세계 최대’라는 이 땅에 세워지는 구조물의 가치에 대한 척도는 근본적인 완성도를 갖지 못한 무의미함을 입증했다. 법규로 제한된 높이에 하나라도 더 많은 층을 집어넣어야 장사가 된다는 상업자본주의적인 기준은 한국 주거시장의 가장 강력한 지침이다. 한강 남단의 아파트들은 강을 향한 경치보다, 향에 대한 집요함으로 강을 등졌다.
아무나 망치만 잡으면 목수, 밤을 새서라도 빨리 짓는다는 비문화적 입김은, 구축構築의 아름다움을 한국의 거리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교각과 상판으로 이루어진 값싼 다리가 가장 가치 있던 시대가 이 땅에 있었다. 가장 값싼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사회에서는 가장 값싼 문화가 만들어졌다. 대개의 지하철역에는 움직임의 역동성보다 기다림의 우울함이 더 강조되어 자리 잡았다. 우리는 분명 화려하고 뭔가 자극적인 것이 쉽게 눈을 끄는 소비지향 사회에서 살고 있다.
정말 가치 있는 것은 새 건물이 지어진 당시의 시대정신을 간직하면서 가로의 분위기에 녹아들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극장․음악당들은 대개 좌우 대칭의 좌석 배치를 갖고 있다. 그 좌석에 앉을 수 있는 권리는 얼마나 자본의 여력이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여의도의 〈국회의사당〉을 비롯하여 한국에 세워지는 많은 관공서 건물들이 권위적 도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국의 정치적 정통성의 결핍은 전통 형식 모방을 통해 희석하려는 의도로, 내용과 관계없이 무조건 기와집이 요구되었다.
전통은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지 모양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다. 고려시대 청자가 조선 도공에게 강요되었다면 우리에게 백자는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건축주 마음대로 디자인을 고칠 수 있다는 천민자본주의 인식은 수많은 건축가들에게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우리 사회의 타인에 대한 배타성은 생존만이 절대절명의 과제였던 고단한 근현대사를 헤쳐 온 세대가 갖게 된 피해의식의 소산일 수 있다. 부석사 일주문에 이르는 길을 덮은 호박돌을 걷어내고 이제 아스콘으로 말끔하게 포장했다. 건축가는 이 날 목 놓아 통곡했다.
건축가 서현(徐顯, 1963- )은 말했다. “건물이라는 시간과 공간 속을 걷다 보면 건물에 숨겨진 건축가의 언어를 듣고, 대화할 수 있게 된다. 건축물은 단순히 벽돌이나 콘크리트를 쌓아올리는 게 아니다. 건축에는 사회적 역동성과 이해, 역사문화적 맥락, 이용자의 인문성까지 반영돼 있다. 그것이 잘된 것이든, 잘못 된 것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