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자비를 팔다

대빈창 2024. 4. 19. 07:00

 

책이름 : 자비를 팔다

지은이 : 크리스토퍼 히친스

옮긴이 : 김정환

펴낸곳 : 모멘토

 

2008년도 정치학자․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 1949-2011)의 종교적 우상에 도전하는 두 권의 책이 이 땅에서 출간되었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알마)는 바로 손에 넣었으나, 부제가 ‘우상파괴자 히친스의 마더 테레사 비판’ 『자비를 팔다』는 25여 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만나게 되었다. 『뉴욕 프레스』의 추천사는 이랬다. “지옥이란게 있다면, 히친스는 이 책 때문에 거기 가게 될 것이다.”

히친스는 2005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와 영국 정치전문지 『프로스펙트』가 공동 실시한 ‘100대 공적 지식인’ 순위 투표에서 5위에 오른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마더 테레사(1910-1997)는 197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위인전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세계 빈자의 어머니’로 성녀로 추앙받고 있다. 그녀가 이끈 《사랑의 선교회》는 전 세계 126개국에 600여개의 수도원을 운영하고 있다. 4천명의 수녀와 4만 명의 평신도 일꾼이 있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마더 테레사의 이미지는 ‘고뇌하면서도 기꺼이 복종하는 자세로 콜카타 빈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모습’(21쪽)이었다. 하지만 마더 테레사가 서로 돕고 지낸 사람 중에는 성스러움의 정반대 극단에 선 이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책은 마더 테레사의 명성으로써 그녀의 행동과 말을 판단하지 않고 행동과 말로써 명성을 평가했다. 그녀를 통해 가톨릭의 선교정치와 성녀 만들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아이티의 독재자 장-클로드 뒤발리에와 미셸 뒤발리에 부부에게 아이티 국가훈장 레종 도뇌르를 받았다. MSIA('영적인 내면의식 운동‘) 광신집단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 존-로저와 교유했다. 그가 준 ’성실賞‘과 1만 달러 수표를 받는 기념사진의 배경 콜카타 시가지는 가짜였다. 시장으로 재임하면서 워싱턴 D. C.를 구걸과 부패의 도시로 전락시킨 흑인 정치가 메리언 메리와 가난한 자들이 꿈꾸던 국민건강보험을 박살 낸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1995년 6월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온갖 범죄를 저지른 비윤리적인 기업인 영국 미디어 재벌 로버트 맥스웰(1923-1991)에 끌려들어 홍보용 사진을 찍었다. 미국 역사상 최대사기사건의 하나인 저축대부조합 스캔들로 재판과정중인 찰스 키팅에게 관용을 호소하는 편지를 법정에 보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성직자 세력, 광산노조에 철퇴를 휘두른 영국의 마거릿 대처, 에티오피아 군사정부를 지지하는 레이건에게 자유훈장을 수여받고, 니카라과의 콘트라 공식후원자 고해신부를 방문하고, 산디니스타 혁명 정당에 훈계를 늘어놓았다. 마더 테레사의 행동은 민중들을 핍박하고 착취하는 자들을 멀리 하지 않았다. 선교회 수녀들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돈을 쓰는 일을 좀체 허용하지 않았다. 전 세계에서 끌어들인 기부금은 벵골에 일급 진료소 여럿 곳을 차리고도 남을 돈이었다. 하지만 마구잡이식 날림 요양시설만 운영했다.

히친스는 결론지었다. “마더 테레사는 자기희생을 하는 숭고한 신앙인이 아니라 자비를 상품화한 다국적 선교 사업체의 수장”이라고. 《사랑의 선교회》는 수십 년 동안 정부와 거대 재단, 대기업 및 시민 개인들로부터 막대한 보조금을 받아왔다. 그녀는 정치화한 교황 체제가 파견한 종교 사업가였다. 바티칸은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아이티 독재정권과 공식 외교관계를 유지한 세계 유일의 정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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