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A가 X에게

대빈창 2024. 4. 17. 07:00

 

책이름 : A가 X에게

지은이 : 존 버거

옮긴이 : 김현우

펴낸곳 : 열화당

 

부제가 ‘편지로 씌어진 소설’ 『A가 X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킹―거리의 이야기』에 이어 나에게 존 버거(John Berger, 1926-2017)의 네 번째 책이었다. 소설의 시작은, 폐쇄된 옛 교도소 73호 감방 마지막 수감자의 편지뭉치가 발견되었다. 수감자는 테러리스트 단체결성 혐의로 이중종신형을 받은 비행사 사비에르였다. 이중종신형의 죄수는 죽은 시신도 형량만큼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없는 가혹한 형벌이다. 편지뭉치는 첫 번째 19편, 두 번째 15편, 세 번째 12편으로 36편이다. 보낸이는 사비에르의 연인 약제사 아이다였다. 편지의 분량은 1쪽부터 13쪽까지 다양했다. 펜으로 간략하게 그린 그림도 가끔 곁들였다.

아이다는 사비에르와 결혼한 부부가 아니어서 면회도 불허되었다. 아이다는 그날그날의 일상과 주변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어루만진 소식을 편지에 썼다. 소설은 편지와 인용, 메모로 구성되었다. 아이다가 보낸 편지 뒷면의 사비에르의 메모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미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우리의 머리는 절대 그들의 똥을 먹을 수 없다'(25쪽) 반미․좌파 정권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 파리 길거리에서 유괴․암살된 모로코 야당 지도자 벤 베르카,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지도자․정신과 의사 프란츠 파농, 반미․좌파 정권 베네수엘라 차베스, 우루과이 언론인․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멕시코 사티스타민족해방전선EZLN 부사령관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항거한 미얀마 화가․행위예술가 흐테인 린.

표지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앞표지의 161-192년경 파이윰Faiyûm 여자초상, 뒤표지는 1세기 파이윰Faiyûm 남자초상. 엘 멜렉에서 출토되었다. ‘박격포가 쏟아지는 크로코딜로폴리스에 살고 있는 친구와 방금 휴대폰으로 이야기를 나눴어요.’(172쪽) 파이윰은 이집트 파이윰 주의 주도이다. 카이로에서 서남쪽으로 130킬로미터 떨어져있다. 고대 그리스어로 크로코딜로폴리스라고도 불렀다.

존 버거는 헌사에 ‘가산 카나파니를 기억하며’라고 썼다. 가산 카나파니(Ghassan Kanafani, 1936-1972년)는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의 창립멤버로 난민 캠프의 교사였다. 그는 1972년 베이루트에서 차량 폭발로 암살당했다. 존 버거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가지 지구로 달려가 정기적으로 미술학교를 열었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에 죽어나가는 가자의 현실에 분노하며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우리 시대의 양심․진보적 지성 존 버거의 책을 20여 권이나 출간한 《열화당》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Arundhati Roy, 1961- )는 추천사에서 말했다. “그가 쓰는 것은 모두 심오하고, 정확하며 대답을 요구한다. 그것은 자유와 그 결핍, 희망과 그 결핍, 권력과 그 결핍, 사랑과 사랑하는 이와 강제로 헤어졌을 때 그 자리를 대신하는 끔찍한 갈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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