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그래도 우리의 나날
지은이 : 시바타 쇼
옮긴이 : 권남희
펴낸곳 : 문학동네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부록 ‘추천사 자선 베스트 10’에서 책명을 처음 만났다. 군립도서관을 검색했다. 다행스럽게 양장본 녹색 장정의 2018년도 재출간본이 있었다. 책은 시바타 쇼(柴田 翔, 1935- )의 작품 두 편이 실렸다. 뒤에 실린 단편소설 「록탈관 이야기」는 시바타 쇼의 데뷔작이었다. 1960년 동인지에 실렸던 작품이 『문학계』에 전재되어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다. 일본 순수문학계 최고 권위의 신인상이다. 1927년 문예춘추文藝春秋에서 제정한 문학상으로 사망한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업적을 기려 만들었다.
록탈관은 라디오 부품으로 진공관의 일종이다. 주인공은 중학생으로 라디오 조립 동아리 회원이다. 미군이 군수 물품에서 빼돌린 군자재 록탈관을 싸게 사려고 분투하는 일화를 그린 성장소설이었다. 경장편소설 분량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1964년 제5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다. 1960-70년대 일본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현재까지 190만부가 판매되었다고 한다. ‘일본 현대 소설’의 고전이 되었다. 신형철은 추천사에서 말했다. “세계 최고의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소설이다.”
소설은 화자 후미오가 어느 찬비 내리는 저녁, 헌책방에서 출간된 지 한 달도 안 된 H전집을 싼 가격에 손에 넣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전집에서 장서인을 발견한 약혼녀 세스코가 책을 빌려갔다. 책의 전주인은 세스코가 대학시절 알고 있던 사노였다. 사노는 도쿄대 가장 좌익적인 역사연구회 회원이었다. 그는 군사조직에 잠행한 치열한 공산주의자였다. 일본 공산당은 육전협(제6회 전국협의회)에서 무장투쟁을 지양하고 평화노선으로 전환했다. 당 중앙 집행위원회는 좌익 모험주의 비판과 군사방침을 포기했다. 사노는 정치투쟁과 선을 긋고 평범한 대학생활을 마쳤고 취업한 회사에서 앞날이 창창했다. 세스코의 부탁으로 사노의 행적을 쫓던 후미오는 그가 자살한 것을 알았다.
소설은 1950년대 일본전후 학생운동 청춘 세대들의 고뇌를 다루었다. 자신들이 믿었던 가치관이 붕괴되면서 삶의 방향과 의미를 상실한 청춘들의 흔들리는 모습이 담겼다.
“나 이렇게 평생 당신 밥을 차려줄 수 있을까 몰라.” 나는 움찔했다.······ 세스코는 전에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99쪽)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무엇을 떠올릴까’하는 의문이 내 가슴에 콕 박혔어.(175쪽)
결혼을 앞두고, 약혼녀 세스코는 두툼한 속달편지를 후미오에게 남겼다. 그녀는 도호쿠의 어느 작은 마을 기독교 학교 영어 교사로 떠났다. 후미오는 생각했다. ‘어쩌면 세스코는 우리 세대를 탈출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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