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마린을 찾아서

대빈창 2024. 4. 4. 07:00

 

책이름 : 마린을 찾아서

지은이 : 유용주

펴낸곳 : 한겨레신문사

 

시집 - 『가장 가벼운 짐』(창작과비평사, 1993) / 『크나큰 침묵』(솔, 1996) / 『내가 가장 젊었을 때』(시와반시사, 2021) / 『은근 살짝』(시와시학사, 2006)

산문집 -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솔, 2000) / 『쏘주 한잔 합시다』(큰나, 2005) /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 (작은것이아름답다, 2013) /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걷는사람, 2018) / 『우리는 그렇게 달을 보며 절을 올렸다』(교유서가, 2022)

소설집 - 『죽음에 대하여』(도서출판b, 2020)

 

지금까지 내가 잡은 시인 유용주(劉容珠, 1959- )의 책들이다. 시인은 1991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시 「목수」외 2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마린을 찾아서』는 시인의 첫 장편소설이었다. 오래 묵은 책이다. 2001년 초판본으로, 출판사도 〈한겨레신문사〉였다. 소설은 한겨레신문에 연재되었던 「노동일기」를 손보았다. 문학평론가 한기욱은 해설 「성장서사의 새 가능성」에서 ‘한 젊은 노동자의 초상’으로 민중적 성장서사로 규정했다. 소설은 3부로 구성된 치열한 자기고백서였다.

1부. 어머니 병치레로 집안이 거덜났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고향집을 떠나 면소재지 시골 중국집의 배달부로, 고단한 삶의 첫 발을 떼었다. 두 달을 조금 넘겼다. 대전 한식집 주방에서 일하던 누나가 구해주었다. 누나가 일하던 식당 잔심부름꾼에서 식료품 도매점 배달원, 부근 식료품 가게에서 잠깐, 그리고 주류도매상 트럭 조수로 뛰었다. 대전역 앞 빵공장에 다닐 때 서울에서 사출공장 다니는 작은형의 대학생 친구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야간학교를 다닐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야반도주 밤 열차로 상경했다.

2부. 1975년 드디어 서울에 입성했다. 그 무렵 누나는 대전을 떠나 서울에서 가정집 식모살이를 하고 있었다. 수원 갈비집 주방에서 보름동안 설거지를 했다. 서울 돈암동 금은방에서 일을 배우게 되었다. ‘에메랄드가 가장 적합한 것 같기도 한데, 아니다, 아냐. 아쿠아마린이라고 하자. 맑고 푸른 바다를 연상케 하는 아쿠아마린은 물을 뜻하는 Aqua와 바다를 뜻하는 Marine이 합쳐진 보석 아닌가. 그래, 저 눈은 맑고 푸른 바다다’(134-135쪽) 아침 출근시간 스크랩북을 가슴에 안고 가게 앞을 지나치는 여대생. 첫사랑 연정에게 붙인 애칭을 소설 표제로 따왔다.

3부. 1978년 9월 정동 제일교회 〈배움의 집〉에 입학했다. 마린과 결혼하려면 대학에 가야했고, 중학과정을 1년에 마칠 수 있는 야학이었다. 첫 수업 국어시간. 선생은 들어오더니 칠판에 윤동주의 「서시」를 적어 내려갔다. 운명이었다. 시인이 되는 것이다. 시인이 될 수 있다면 마린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대학에 가기 위해 미래가 보장된 금은방을 5년 만에 그만두고 독서실에 들어갔다. 고졸 검정고시를 치른 날, 알콜중독자 아버지의 광기와 폭력에 피했던 술을 처음 마셨다. 마린의 눈빛을 닮은 미아리 방석집 아가씨에게 동정을 떼었다. 대학예비고사 준비로 독서실을 그만두었다. 돈이 없어 학원접수는 못하고 산동네 단칸방, 봉천동 산꼭대기 누나네, 부산 큰 형네를 전전하며 예비고사 문제집만 풀었다. 예비고사 치른 날부터 허름한 설렁탕집 식당 주방에서 일했다. 시험결과는 참담했다. 공수특전 하사관에 응모했다. 필기시험을 합격하고 수도통합병원에서 정밀 건강검진을 받았다. 입대일은 9월 1일이었다. 명동직업소개소 쪽지를 들고 찾아간 곳은 변두리 싸롱이었다. 입대일을 앞둔 날까지 일했던 그곳은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난 세월이었다. 집결지의 약식 신체검사에서 옴 보균자로 귀향조치 당했다. 다시 싸롱으로 돌아왔다. 12월 1일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군용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시인은 오롯이 글을 쓰려고 첩첩산중 고향, 속칭 다릿골로 돌아왔다. 전북 장수의 수분령水分嶺은 금강과 섬진강이 갈라지는 경계점이다. 해발 500 미터가 넘는 고개 아래가 시인의 고향집이다. 시인은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외할머니와 이모가 독채로 얻은 전셋집의 문칸방 한 칸을 거저 쓴 것이다. 일곱 살 때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세거지 전북 장수 산골로 이사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