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無花果는 없다

대빈창 2024. 4. 24. 07:00

 

책이름 : 無花果는 없다

지은이 : 김해자

펴낸곳 : 실천문학사

 

나는 10여 년 전 시인의 詩와 처음 만났다. 시인 故 박영근의 시 해설집 『오늘, 나는 시의 숲길을 걷는다』의 「영아다방 앞에서」였다. 산문은 시인 안상학의 『그 사람은 돌아오고 나는 거기 없었네』의 발문 「처음인 양 재생되는 오래된 사랑」이었다. 김해자(1961- )는 고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조립공, 시다, 미싱사, 학습지 배달, 학원 강사를 전전했다. 노동자들과 시를 쓰다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했다. 불혹이 다되어서였다.

문학전문 출판사 〈걷는사람〉의 ‘걷는사람 시인선’은 국내 시인선 시리즈 가운데 최초로 여성 시인의 시집을 1권으로 출간했다. 『해자네 점집』은 시인의 네 번째 시집으로 2018년 제33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내가 잡은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었다. 첫 시집 『無花果는 없다』를 출간된 지 23년이 흘러서야 손에 들었다. 시집은 〈걷는사람〉의 ‘다;시’로 2022년 재출간되었다.

시집은 5부에 나뉘어 73편이 실렸다. 시인 김정환은 해설 「노동자와 시인, 그리고 김해자」에서 ‘인천 노동자운동권의 대모’인 그녀를 ‘노동자시’의 대모라고 불렀다. 그녀는 스물셋에서 서른 중반까지 현장 노동자로 인천仁川 효성동․청천동․가정동․송림동․송현동․학익동..., 보증금 20만원에 월세 4만원짜리 벌집을 전전했다.

표사를 쓴 두 시인이 낯익었다. 시인 황지우는 “미덕이 지순해도 이렇게 시가 되는구나,”라고. 시인 故 박영근은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믿는 것들의 의미를 지키고 내면화하려는 태도” 라고. 시집은 '우리 시대의 모든 언더그라운드을 위하여 쓰여진 응원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마지막은 부제가 ‘386 사랑법’으로, 「승리는 애초에 꿈꾸지 않았으니」의 1․2연이다.

 

이게 몇 년 만이냐 / 중뿔나게 건강한 노동자로 살지도 못하고 /알량하게 지식인도 되지 못한 너나 나나 / 이제는 어디 한 군데 명함 내밀 데 없는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있겠지 / 멀리 울산에서 걸려온 전홧줄 사이로 / 몇 마디 못 하고 숨만 고르는구나 // 보나마나 눈가를 훔치고 있을거야 그지 /아직도 사식이며 내복 차입해야 할 남편 얘기일랑 / 혼자 아이 키우며 월세방 전전하던 세월일랑 / 지나치듯 수다로 떨어버리자 다만 / 여대생이 미싱을 밟고 선반공이 자본론을 암송하던 / 우리의 청춘 흘러간 유행가로 부르지는 말자 / 어둠이었으되 절망이었다 말하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