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雜說品
지은이 : 박상륭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유리'라는 사막에서 온 돌팔이 중, 湖東의 김윤식翁, 七祖語論, 김정란 시인, 조씨(朝氏)네 문중의 古今笑叢, 노엄 촘스키의 '황제와 해석', 神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小說法, 神曲, 파우스트, 유다福音, 이희승 국어사전, V. I. 레닌의 미술비평 한 토막, 김진석 철학교수, 未堂, 달마재 신부, 山海記, 朴姓某氏라는 잡소리꾼의 품바타령, 죽음의 한 연구, 李文求 公, 백결(百結) 선생, 샤갈이나 마그리트, 황주리나 염성순 등, 堯舜같은 聖君, 학자 노귀남 박사, 김진수. 소설을 읽어나가다 여기저기서 귀동냥한 인물과 책명이 나올때마다 긁적거렸지만 헐거운 그물 사이로 빠져나간 고기가 한두마리는 아닐 것이다. 여기서 평론가 김윤식은 '아무리 쇠귀에 경 읽기라 해도 고토의 중생을 외면하지 말고 하산하라'고 읍소해 잡소리꾼의 새로운 품바타령인 '잡설품'이 세상의 빛을 보게 만들었고, 시인 김정란은 '박상륭은 한 세월이 흐른 뒤 무덤에서 가장 많이 불려 나올 소설가'라고 작가의 문학적 성취에 갈채를 보냈다. 나는 박상륭 소설을 이해하기는 커녕 난독성 짜증에 자신을 제어하지도 못하면서 저자의 모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일명 '박상륭 교도(敎徒)'인 것이다. 내가 박상륭이라는 이름 석자를 처음 만난 것은 작가의 절친이었고 지금은 고인이 된 이문구의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이라는 문인기행 산문집을 통해서였다. 그 책에는 故 김현이 '이광수의 『무정』 이후 씌어진 가장 좋은 소설의 하나'라고 극찬한 '죽음의 한 연구'가 고인이 된 친구의 손을 빌려 활자화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졌다. 1969년 부인을 따라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을 간 저자가 1974년 아무 연락도 없이 찾아와 5 ,000장 분량의 장편소설 원고를 맡기고 다시 캐나다로 떠난다는 중원의 무림고수들만이 그 뜻을 짐작할 수 있는 경지를 보여준다. 이후 나는 작가의 초기작인 '아겔다마'와 '열명길'을 잡고, 아직도 제목만 일별해도 골이 지끈지끈 아파오는 '칠조어론'을 몇쪽의 소설분량인지 대충 헤아려보았다. 그리고 유일한 산문집인 '산해기' - 여기서 나는 작가의 소설이나 산문을 구분할 수 없다. 내게는 모두 '잡설'로 보일 뿐이다. - 이후 '평심',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소설법'을 거쳐 최근작인 '잡설품'에 이른 것이다. 이 책은 2008년 5월에 출간되었다. '교도'답게 나는 출간되자마자 손에 넣었으나, 막상 책을 펼치기까지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나는 솔직히 두려웠다고 고백해야 한다. 난독성 짜증에 손은 자꾸 '해설'부터 뒤적이려 한다. 그렇다. 작가의 소설보다는 평론가의 해설을 이해하기가 수월한 것이 박상륭 소설의 특징(?)이다. '시동이는 애비가 병을 앓고 있는 성을 떠나 황야로 갔지만 며칠을 거기서 묵었는 지 스스로 알려고 하지도 않은 채 슬쓸하게 떠돈다. 떠돌다 다시 순례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에, 뼈만 한 무덤 남기고 사라진다.' 이 작품의 해설을 쓴 김진석의 작품 줄거리다. 그런데 소설분량은 200자 원고지 2,200매로 방대하다. 작가의 소설이 난해한 것은 그동안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를 가진 리얼리즘 소설에 이 땅의 독자들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박상륭의 소설은 하나같이 '동서양의 신화와 전설, 고전을 가로지르는 지식의 넓은 스펙트럼 그리고 빈번한 방언과 어려운 한자어의 사용, 기존 소설에 대한 통념의 파괴'와 '주제의식을 앞세운 형이상학적' 소설로 어떤 작가와도 비교되지 않는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다. 박상륭 소설이 나에게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지만 그래도 작품을 잡을 수 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죽음의 한 연구'가 역사적 인물인 중국 선종의 육조인 혜능이 주인공이었다면, '칠조어론'은 대가 끊긴 가상의 칠조대사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책 '잡설품'은 팔조대사(시동)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잡설(?)이라지만 중동무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육조 혜능과 칠조 촛불중과 팔조 시동이의 의발전수(衣鉢傳授) 모습을 먼발치에서나 구경한다는 것은 큰 행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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