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

대빈창 2024. 5. 28. 07:00

 

책이름 :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지은이 : 크리스토프 바타유

옮긴이 : 김화영

펴낸곳 : 문학동네

 

1787년 베트남 일곱 살 황제 칸은 프랑스 궁정에 도착했다. 루이 16세 치하의 프랑스는 우울했다. 칸은 베르사이유에서 폐렴으로 죽어 궁궐 뒤 작은 묘지에 묻혔다. 피에르 피뇨 드 브레멘 주교는 무장한 군인과 선교단을 베트남에 파견했다. 생장 호․생폴 호 두 척의 배는 라 로셴항을 떠나 포루투갈, 모르코, 탕헤르, 아프리카 해안, 희망봉, 마다가스카르, 인도, 셰일론을 거쳐 열세 달 만에 베트남에 도착했다.

프랑스 혁명으로 신분적 특권이 폐지되었다. 조국은 그들을 더 이상 보살펴주지 않았다. 프랑스에서는 두 척의 배가 사람과 재산을 실은 채 길을 잃고 말았다고 여겼다. 도미니크 수사는 베트남 농사꾼들의 마을 바딘에 머물렀다. 구식 보병총으로 무장한 백여 명의 병력은 사이공으로 떠났다. 프랑스 군인들은 더위와 병으로 죽어갔고, 사이공에서 농민들에게 참혹하게 전멸 당했다. 수사 다섯 명과 수녀 세 사람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아르망드 수녀는 배 안에서 콜레라로 죽었다.

마을은 너무 작았다. 도미니크 수사․미셸 수사․카트린 수녀는 마을을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1792년 8월, 파리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국민회의가 출범했고, 루이 16세는 사형 당했다. 생 마르탱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었던 고문서와 서신들이 국민군에게 불살라졌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베트남을 떠난 선교단은 잊혀졌다. 우옌 안 섭정공이 1800년 황도皇都 후에의 주인으로 앉았다. 그는 바딘의 도미니크 수도회 교단에 복수했다. 수사와 수녀는 학살당했고 평화의교회는 파괴되었다.

중부 안남으로 떠난 세 명의 일행에서 미셸 수사는 습지열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들은 콩라이로 들어가 지아라이족과 함께 일했다. 도미니크와 카트린은 자신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졌음을 알았다. 그들은 이제 프랑스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비는 사흘을 더 내렸다. 그들은 상대에 대해 욕망을 느꼈다. 가까워진 그들은 몸의 확실한 존재를 사랑했다. 그리고 하느님을 잊었다. 육년 뒤 카트린과 도미니크는 죽었다. 지아라이 사람들은 그들의 시신을 마을 어귀에 묻었다.

불문학자 김화영은 안식년을 맞아 1994년 초여름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일 년을 생활했다. 몽파르나르역 서점의 진열장에서 작은 책 『안남Annam』을 만났다. 문장은 짧고 여운은 긴, 소설의 매혹에 빠져 들어갔다. 옮긴이 김화영(1942- )은 해설 「만남을 찾아가는 망각의 여정」에서 “문체의 낯섦과 우화적이고 담담한 어조로 본다면 지금부터 오십여 년 전 마찬가지로 무명인 한 청년작가가 들고 나와 충격을 던져주었던 데뷔작 『이방인』을 연상”(154쪽)했다. 크리스토프 바타유(Christophe Bataille)가 스물한 살에 발표한 첫 작품에, 프랑스 문단은 신예작가상과 되마고상을 수여했다. 크리스토프 바타유는 말했다. "내가 소설을 쓰는 유일한 이유, 그것은 세계가 추악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현실과 싸우기보다, 언어의 아름다움으로 세계를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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