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석주石州 권필權韠 시선詩選

대빈창 2024. 5. 29. 07:00

 

책이름 : 석주石州 권필權韠 시선詩選

옮긴이 : 허경진

펴낸곳 : 평민사

 

군립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하고, 2년여의 세월이 흘러서야 책을 손에 들었다. 25년 세월 저쪽, 강화고인돌축제에서 나라에 변고가 일어나면 땀을 흘리는 영험한  비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경남 밀양의 사명대사 표충비를 떠올렸다. 경술국치․한국전쟁․4.19혁명... 역사의 소용돌이마다 한 됫박이나 땀을 흘린다는 비석이 강화도에 있었다. 길을 물어 찾아간 곳은 송해 하도리의 나즈막한 구릉의 잡풀더미에 묻힌 향토유적 제29호의 〈석주권필유허비石洲權韠遺墟碑〉였다.

남용익은 『호곡시화壺谷詩話』에서 역대 뛰어난 시인 79명을 가려 뽑았다. 고려는 이제현․정지상․이규보를, 조선은 박은․권필․정두경 3인을 으뜸으로 치켜세웠다. 『석주집』에 850여 수의 시가 전하고 약간 편의 산문이 남아있다. 정조正祖는 “우리나라의 시가詩家에서는 오직 권석주가 성당盛唐의 바른 소리를 얻었다”고 하여 권필을 기렸다. 권필은 임진왜란을 계기로 강화와 인연을 맺었다. 강화로 피난온 이후 한양과 오가기를 반복하다 1597년(선조 30)에 강화에 정착했다. 1610년(광해군 2) 권필은 강화도 생활을 정리하고 한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강화도와 인연을 맺은 지 거의 20년 만이었다.

『석주 권필 시선』은 〈韓國의 漢詩〉 시리즈 열한 번째였다. 옮긴이 허경진은 淵民學會 편집위원장으로 한시 번역에 매진했다. 현재 최치원에서 황현까지 시리즈 40여권이 출간되었다. 옮긴이는 서문에서 “권필에게선 육사와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권필의 시는 서늘하게 날이 섰다”고 했다. 시선집詩選集은 5부에 나뉘어 72수를 담았다. 부록으로 「석주 권필의 생애와 시」, 「권필의 죽음」이 실렸다. 권필은 강화도를 떠난 지 2년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의 나이 44세 때였다. 석주는 천성이 강골로 불의와 타협할 수 없는 열혈사내였다. 그의 옳지 못한 일을 참지 못하는 선천적 기질은 죽음을 앞당겼다. 권필의 가장 시인적인 삶은 그의 죽음이었다.

1612년(광해군 4) 봄, 임숙영任淑英이 올린 시정時政을 힐난하는 내용이 광해군의 비위를 건드렸다. 삭과削科하라는 임금의 명령에, 권필은 시를 지어 임숙영을 두둔하고 외척들의 전횡을 풍자했다. 심한 고문을 당했고 함경 경원 유배가 떨어졌다. 석주는 귀양을 떠나면서, 동대문 객점에서 벗들과 이별하며 폭음한 후 장독으로 숨졌다. 마지막은 권필을 죽음으로 내몬, 광해군 외척 유씨柳氏를 풍자한 〈궁류시宮柳詩〉 「임숙영의 과거 급제를 취소했다기에聞任淑英削科」(114쪽)의 전문이다.

 

宮柳靑靑花亂飛   궁궐 뜨락 버들은 푸르고 꽃잎은 어지러이 흩날리는데,

滿城冠蓋媚春暉   온 성안의 벼슬아치들은 봄빛을 받아 아양떠는구나.

朝家共賀昇平樂   태평시대라 즐거웁다고 조정에서는 함께 축하했건만

誰遺危言出布衣   그 누가 위태로운 말을 포의布衣에게서 나오게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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