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카메라 좀 갔다 주세요"
"이거"
"아니, 그건 연필깍이고, 장롱 밑에서 두번째 서랍에 까맣고 네모난 거요"
"이거구나. 뭐 찍을거 있냐"
"생강나무 꽃이 예뻐요. 왜 산에 가면 노란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잖아요"
"그게 생강나무야. 동백나무가 아니고"
"동백나무라고 그러기도 해요"
산을 내려오는 발걸음을 빨리 했습니다. 아침산행에서 한구비를 돌아서는 산비탈에 어느새 생강나무의 꽃이 만개 했습니다. 서도에서 팔경을 선정한다면 저는 지금 시절의 여기 생강나무 군락지를 꼽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봄의 전령으로 진달래나 개나리를 들먹입니다. 하지만 찬바람이 가시지않은 마른 숲에 가장 먼저 봄 소식을 알리는 나무가 생강나무입니다. 다른 나무들이 아직 새순을 꼭 아문 채 추위에 떨고 있을때 생강나무는 부지런하게 망울망울 파스텔 톤의 꽃 무더기를 피어 올렸습니다. 제가 처음 주문도의 삶을 시작하면서 헛똑똑이로 산수유나무로 착각한 나무이기도 합니다. 매년 이맘때면 TV에서 남도의 봄소식을 전하면서 지리산 자락 구례의 산수유 마을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생강나무와 산수유나무의 꽃을 TV 화면으로 구분하기는 힘듭니다. 다만 산수유나무의 꽃 무더기가 더 울울한 것 같습니다. 급한 마음에 꽉조인 등산화 끈을 끄르기가 뮈해 마루를 걸레로 훔치던 어머니에게 카메라를 부탁했습니다. 어머니는 먼저 앉은뱅이책상위의 연필깍이를 집어 오셨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동백나무도 맞는 말씀 이십니다. 중부 이북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로 불렀습니다. 아열대 수종인 동백나무가 자라지 못하자, 선조들은 생강나무의 까만 열매로 기름을 짰습니다. 그래서 생강나무를 산동백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 머릿기름은 향과 질이 으뜸이라고 합니다. 생강나무로 불리게 된 연원은 잎이나 어린 가지를 잘라 비비면 독특한 냄새가 나는데 바로 생강 냄새가 나기 때문입니다. 생강나무는 녹나무과의 많은 식물이 그렇듯이 방향성 정유(특이한 향기를 가진 기름)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진짜 생강은 양념으로 이용되는 뿌리채소입니다. 지금은 씨생강 파종의 적기입니다. 5일장에 나가 노점상 할머니들에게 싹이 돋아난 생강을 사와 몇 조각으로 나눠 땅에 묻으면 됩니다. 생강은 고온을 좋아하여 생장이 아주 더딥니다. 한달이 지나야 땅거죽을 밀고 고개를 내미는 댓잎처럼 생긴 생강싹을 볼 수 있습니다. 김장때 수확하여 젓갈의 비린내를 없애는 양념 재료로 요긴하게 쓰입니다. 자! 이제는 아셨죠. 생강나무는 나무이고, 생강은 풀입니다. 그러기에 생강나무에는 생강이 열리지 않습니다. 다만 생강나무는 생강의 맛과 향이 나는 방향성 정유를 함유하고 있습니다.(이유미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나무 백 가지와 박원만의 텃밭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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