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스님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無)."
"위로는 모든 부처님에서 아래로는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성이 있는데, 개에게는 어째서 불성이 없습니까?"
"그에게는 업식의 성품(業識性)이 있기 때문이다."
진순이가 복숭아나무 둥치를 두발로 제게 헤집고 있습니다. 진순이는 태어난 지 채 한달이 못된 진돗개 트기 입니다. 어머니는 해산물로 반찬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인 가재 껍질과 꽃게 등딱지 등을 나무밑에 거름으로 묻습니다. 그런데 진순이가 선천적인 민감한 후각을 발휘 합니다. 비린내를 맡고 땅을 헤집어 음식물쓰레기를 간식거리로 삼는 것 입니다. 시골살림에서 개는 꼭 키워야 합니다. 작은 외딴 섬에서 도둑이나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보다는 처치곤란한 음식물쓰레기를 먹이로 이용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기에 비싼 개사료 값을 아낄 수 있습니다. 개의 배설물은 텃밭의 채소와 뒤울안의 화초와 집 주변 과수의 거름으로 요긴하게 씁니다. 진순이의 원래 이름은 복순이였습니다. 뭍인 김포 태생 복순이를 외딴 섬 어머니의 식구로 들인 누이가 '복을 불러 들인다'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며칠 못가 '진순이'가 입에 붙은 어머니가 쉽게 부르게끔 이름을 개명 하였습니다. 우리집의 개는 20여년 전부터 숫놈은 무조건 '진돌이', 암놈은 '진순이'라고 부른 전통을 따른 것 입니다. 그때 작은 형은 진도의 지인을 통해 진돗개 남매를 분양 받았습니다. 정말! 놈들은 족보가 있는 개답게 영리 하였습니다. 개에게도 혈통이 있다는 것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놈들에게 오빠에게는 '진돌이', 누이에게는 '진순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보면 볼수록 주인에게는 절대 충성하고, 낯선 이에게 늑대처럼 사나움을 드러내는 진짜 진돗개 였습니다. 하지만 진돗개의 사냥개 본성으로 진순이의 삶은 짧았습니다. 진순이가 입가에 피를 묻힌 날이면 동네 닭들이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원성으로 진순이는 개장사에게 넘겨졌습니다. 동생을 잃은 진돌이가 시름시름 기운을 못 쓰자 아버지는 어쩔수 없이 개장사를 불렀습니다. 정이 들대로 든 저에게 진돌이의 선한 눈망울이 아직 선합니다. 그후 저는 집에 들인 개들에게 무조건 '진돌이'와 '진순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러기에 '진순이'가 어머니의 입에 밴 것 입니다. 어머니가 주문도에 오시고난 후 우리집은 세마리째 개를 기릅니다. 진순이. 진돌이. 그리고 오늘의 글의 주인공인 진순이(복순이) 입니다. 참! 진순이는 종이박스를 아주 무서워합니다. 어지러진 물건을 정리하려 박스를 집어들자 진순이가 부리나케 줄행랑을 놓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진순이가 섬에 닿기까지 무려 두시간 이상을 박스에 갇혀 차와 배멀미에 시달린 기억 때문 입니다. 진순이가 집에 오고 하루가 지나도 먹이에 입을 대지 않습니다. 마실 오신 아랫집 할머니가 말씀 하십니다. '배멀미로 창자가 놀래서 그래, 이틀 지나면 괜찮아.' 경험적 사실은 진실 입니다. 진순이가 오고나서 어머니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핍니다. 어린 손주를 어르듯 진순이를 대 합니다. 골다공증으로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의 산책에 진순이가 어리광을 부리며 따라 나섭니다. 외출에 흥이 겨운 진순이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노루 뛰듯 합니다. 그 광경을 보고 저도 크게 웃음을 터뜨립니다. 진순이는 불성(佛性)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낯선 이가 지나가는 지 앙칼지게 진순이가 짖습니다. 어머니가 한마디 하십니다. "콩만한 게 짖기는 참 나."
선(禪)이란 말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말에 집착하면 본성을 이해할 수 없고, 불성도 아니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조주선사의 '없다(無)'는 절대가 아닌 모든 상대적이고 분별적이고 개념적인 생각들에 대한 답인 것 입니다. 위의 선문답은 제자들의 말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기 위한 조주선사의 '가르침의 기술'인 것 입니다.
'대빈창을 아시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랑구지를 아시나요 (0) | 2011.06.07 |
---|---|
무릉도원은 개복숭아꽃이었다. (0) | 2011.05.16 |
오솔길에서 옛 기억을 더듬다 (0) | 2011.05.02 |
생강나무에는 생강이 없다 (0) | 2011.04.21 |
안개가 섬을 깨운다 (0) | 2011.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