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루에 네다섯번 오고가는 오솔길입니다. 4월 하순입니다. 서해의 작은 섬 주문도의 봄은 더디기만 합니다. 꽃피는 시기가 강화도가 서울보다 5일 늦고, 주문도가 강화도보다 5일 늦다고 어르신네들은 말씀들 하십니다. 이제 개나리 꽃이 만개하면서 여린 새순이 고개를 내밉니다. 백목련도 덩달아 우람한 꽃송이들을 하늘을 향해 벌립니다. 섬 날씨가 차다는 것을 반증하는 에피소드를 한가지 소개해 드립니다. 새내기 직원이 처음 겨울을 나면서 4월말에 옛 친구들과 인천 부평역 지하상가에서 약속을 잡았습니다. 본도인 강화도행 첫배는 아침 7시입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새내기가 군고구마 장사가 걸치는 두터운 털점퍼를 걸치고 약속장소에 나가자 친구들이 모두 파안대소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는 알래스카에서 왔냐?' 그럴만도 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반팔차림이었습니다. 이 에피소드에도 지구온난화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반팔차림도 때이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화석연료의 남용으로 인한 열기가 지하상가를 덥힌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토배기들은 요령이 있습니다. 강화도에 출타라도 할라치면 점퍼를 걸치고 나갔다가, 본도 외포리 선창의 단골슈퍼에 맡기고 일을 보고 돌아와 다시 점퍼를 걸칩니다. 제 얘기가 과장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주문도에서 여름 반팔 차림은 일주일이 고작 입니다. 어른신네들은 내복을 못자리가 끝나야 벗습니다. 꼬박 5월까지 내복을 입으십니다. 그만큼 섬의 겨울은 바람이 거세 몸으로 느끼는 추위가 보통이 아니고, 여름은 있는듯 없는듯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혹서기라도 대빈창에 몰아닥친 피서객들은 해가 떨어지며 긴팔 옷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얘기가 샛길로 빠졌습니다. 그나마 저는 주문도에 정착하면서 오솔길을 걷는 옛 정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고향 김포의 오솔길은 기억 속에만 살아 있습니다. 옛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산길을 따라 걷는 오솔길은 시원(?)하게 뚫린 아스팔트로 대체 되었습니다. 산자락에 나즈막히 엎드려있던 마을은 하나같이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전락 했습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압축적인 근대화, 산업화 - 한강의 기적 - 의 결과물인 것 입니다. '물의 도시 한강 김포 신도시'의 위용입니다. 이것이 소위 개발이고 발전 입니다. 공동체가 사라진 자리에 상품으로 전락한 인간들이 로봇처럼 생산성 경쟁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오솔길을 따라 학교를 다녔습니다. 비오는 날은 신작로로 합승(마이크로 버스)이 다녔지만, 거리가 조금 먼 중고교 누나, 형들에 밀려 언감생심 이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전이었던 그시절, 사납게 퍼붓던 소나기를 온몸으로 두드려 맞으며 오솔길을 오갔지만 꺼떡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국민학교 시절. 저는 책보를 어깨에서 허리까지 세로 걸친 채 마구 뛰어다녔습니다. 당연히 신발은 검정고무신이었습니다. 예닐곱명이 학교로 향하다 눈빛이 통하면 공동묘지에 책보를 내려놓고, 김일의 박치기와 장영일의 드롭킥, 천규덕의 당수를 흉내내며 농땡이를 쳤습니다. 일명 산치기입니다. 또래들이 하교를 할 시간에 맞추어 온몸에 붙은 검불을 털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제 부랄친구들은 단 한명도 국민학교 개근상을 타지 못했습니다. 국민학교 6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그날 수업중에 실습이 있었나 봅니다. 저는 양은솥을 머리에 인 채 하교길에 올랐습니다. 먹을 것이 궁했던 그 시절. 실습하고 남은 국수 반봉지를 삶아, 나뭇가지를 꺽어 만든 젓가락으로 맨 국수를 퍼먹던 동무들. 지금도 추석, 설날 전날 고향에서 만나 옛 얘기꽃을 피웁니다. 제 생각에는 6년을 오솔길을 같이 걷던 추억의 힘이라 여겨집니다. 낮은 고개를 오르는 오솔길의 왼편 검은 차광막은 고구마밭 울타리입니다. 언젠가 제가 말씀 드렸죠. 고라니 방지용 울타리에 대해서 말 입니다. 마른 풀 사이로 새싹들이 고개를 내밉니다. 5월을 보내면서 마음 다잡고 야생초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오솔길 한구석에서 한결같이 저를 반겨주는 녀석들의 이름도 모른다는 것이 도리일 수는 없겠지요. 오솔길이 되살아나야 공동체가 되살아날 것 입니다. '오래된 미래'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에 정감이 오가던 오솔길인지도 모릅니다. 즉 아스팔트가 오솔길을 짖뭉개는 현재의 시스템은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인 지구를 파멸로 이끄는 길과 다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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