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절대적 토건국가입니다. 전체 국민 1인당 GDP의 20%를 차지하여, 선진국의 2배에 달하는 비중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흔히 박정희 독재정권 시대를 경제적으로 규정하는 용어로 '개발독재' 시대라고 합니다. 이 독소는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각인되어 사회적 암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 개발주의는 '무조건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무분별한 개발을 절대선'으로 여깁니다. 개발국가란 '국가가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개발의 주체로서, 그것도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더 많은 성장의 도구로 여기는 파괴적 개발의 주체로 구실하는 국가' 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개발국가 중에서도 가장 타락한 토건국가입니다. '토건업과 정치권이 유착하여 세금을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국가'로서 국토파괴는 그 맹목성과 폭력성, 반민주성은 가히 상대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홍성태 교수의 〈대한민국은 공사중, '토건국가'의 개혁을 위해〉에서 부분 인용) 온 국토를 파헤치고 뒤엎고 짓밟고 막고 터뜨리고 찢어 발기는 행위가 개발이고, 발전이고, 번영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수많은 골프장 건설, 새만금 방조제 완공, 4대강 콘크리트 수로화를 녹색성장이라 부릅니다. 조국의 빛나는 발전에 고무된 방방곡곡의 사람들이 떼거지로 국토 지도(!)를 바꾼 대역사의 현장에 몰려 듭니다. 그런데 그 열광적인 환호성에 생태경제학자 우석훈은 찬물(?)을 뿌립니다. 디버블링, 즉 '토건경제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랐을 때 실물경제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거품이 붕괴하는 현상' 과정에 들어갔다고 진단합니다. 한국의 토건경제는 생태계의 위기를 넘어 경제 주체 재생산의 위기(출산율 저하에 따른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를 맞은 것 입니다. 그러기에 토건경제를 탈토건 경제로 전환시키는 것은 국민경제를 생태적으로 전환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생태적 전환의 삶이란 스스로 소비를 억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토건족의 천국인 이 땅에서 가장 약한 자는 터무니없는 린치에 신음하는 국토와 멸종되고 있는 동물들 입니다. 위 사진은 제가 아침 산행에서 매일 만나게 되는 나무입니다. 나무를 볼 때마다 저는 가슴 한 구석에 휑한 바람구멍이 난 것같은 느낌입니다. 제가 남은 삶을 살면서 산행을 하는 동안 어쩔 수없이 저 나무와 조우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깊은 상처를 안은 나무는 저보다 더 오래 이 행성의 운행을 지켜 볼 것 입니다. 나무 사이로 난 길 끝의 원통형의 구조물은 물탱크입니다. 상수도 공사를 하면서 저지른 만행으로 짐작될 뿐 입니다. 아마! 공사업자는 일의 효율성으로 보였을 것 입니다. 굴착용 드릴로 나무의 허리를 뚫고 와이어 줄을 관통한 모습입니다. 참혹합니다. 나무의 상처에서 흘러 나오는 수액으로 와이어 줄은 시뻘겋게 녹이 슬었습니다. 산길을 거슬러 오르자 한 주검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올무에 걸린 어미 고라니였습니다. 어제 밤에 일을 당했는 지 주검에는 온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올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이것은 고라니의 이동통로가 쉽게 사람 눈에 드러난 것을 의미합니다. 고라니는 산길 옆 낮은 둔덕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나무 잔가지가 부러지고, 발버둥질에 마른풀이 패였습니다. 한적하기 그지 없었던 서해의 외딴 섬 주민들이 술렁거립니다. 세계5대 갯벌인 강화남단갯벌을 방조제로 막는 '인천만조력발전소' 건설 때문입니다. 정부는 친환경에너지를 강조하며 밀어 붙이려 하고, 어민들은 어족자원의 고갈이 눈에 뻔히 보이는 국책사업의 반대항의 집회로 작은 섬들이 술렁입니다. 시화호, 새만금에 이어 강화갯벌을 죽이는 조력발전소 건설을 친환경에너지라고 강변합니다. '모든 폭탄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가진,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랑하는 세계 최강 재래식 폭탄을 러시아는 '친환경 폭탄'이라고 강변합니다. 방사능을 내뿜지 않는다고. 대한민국과 러시아의 '친환경'은 닮은꼴 입니다. 와이어 줄에 몸을 관통 당한 상처를 안은 저 나무가 말없이 웅변하고 있습니다. 토건국가의 녹색성장의 진면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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