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줄반장 출신의 줄서기
지은이 : 이문구
펴낸곳 : 학고재
명천鳴川 이문구(李文求, 1941 - 2003) 선생은 예순셋의 나이로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3대 연작소설집 『관촌수필』, 『우리 동네』,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와 유고산문집 『까치둥지가 보이는 동네』(바다출판사, 2003)는 진즉에 두세 번 잡았다. 선생을 떠올리다 아쉬움에 책장을 둘러보았다. 다행스럽게 두 권의 책이 더 있었다.
나의 책장 한 칸은 ‘학고재 산문선’이 차지했다. 고고미술사가 김원용의 『나의 인생 나의 학문』에서 철학자 안현수의 『깊고 넓게 생각하기』까지 열다섯 권이 어깨를 겯었다. 『줄반장 출신의 줄서기』(학고재, 2000)는 〈시리즈 11〉 이었다. 책술의 먼지를 걷어내고 25여년 만에 다시 펼쳤다. 연극평론가 안치운의 『옛길』에 이어 두 번째였다. 선생이 예순에 접어들면서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내던 90년대 말은 한국이 IMF 신탁통치아래 놓였던 어려운 때였다. 그 시절, 여러 지면에 발표됐던 인간과 자연, 문학, 사회에 대한 산문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1부 ‘땅은 아무 편도 아니다’는 자연과 농촌에 대한 사랑, 작가의 세계관에 관한 글들이었다. 10여년 전만해도 냇물을 식수로 섰던 복 받은 땅이 약수터, 강물, 지하수까지 오염. 고향 폐가에서 주운 질화로의 무표정. 불특정 다수의 추상적인 호칭 ‘서해’. 고향 친구와 독지가가 지어준 고향의 작업실. 수제품 구두 두 켤레에 대한 애착. 분수는 자기정체성을 지탱하는 자기 확인의 성. 볏짚은 농촌의 세간․살림살이를 일으켜준 바탕. ‘아버지가 광복을 전후하여 우리 고을의 농민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을 이끈 좌익의 우두머리였기 때문’(57쪽)을 접하며, 나는 故 박완서(1931-2011) 선생의 말을 떠올렸다. “열 살에 그런 일을 겪은 이가 어떻게 당신처럼 하해와 같은 도량을 가진 인격으로 자랄 수가 있단 말입니까. 그게 만약 문학의 힘이었다면 지금이라도 문학 앞에 무릎을 꿇고 싶습니다.”
2부 ‘거품과 앙금’은 정치문화에 대한 비판적 글들을 담았다.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의 시위에서 벌어진 노동자 고문 조사. 이태에 걸친 장마철 폭우로 국제적 동냥질에 나선 왕조국가 북한. 영국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테레사 수녀 장례식. 지구상에 유독 우리나라에만 있는 화병을 다스릴 수있는 담배. 경제협력개발기수(OECD)에 가입한 지 1년 만에 IMF 구제금융 국가로 전락. 남을 의식한 체면치레가 보통이 된 거품사회.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 행렬. 쌍팔년은 1955년(단기 4288)을 헐뜯는 말.
나의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문 3부 ‘나는 늘 남의 책이 커 보인다’는 작가의 문학관을 풀어낸 글편들이었다. 작가 지망의 꿈은 삶을 잇도록 해준 하루하루의 양식. 정도 600년 서울의 문학이 제외된 문화의 거리 지정. 『만인보』는 우리나라 갑남을녀를 시적으로 승화시킨 시집. 계간 『실천문학』 폐간사건. 문인들이 받는 사회적인 대우는 근본적으로 문학에 대한 모욕. 순문학인 및 순수예술인들의 생활보호에 무대책인 정부. 시인 이흔복의 첫 시집 『서울에서 다시 사랑을』의 발문 「길을 아는 운전사」. 『허삼관 매혈기』. 산악인 작가 박인식의 장편소설 『백두대간』의 촌평. 국문학자 김광길의 화갑기념 문집 『김광길의 이 생각 저 생각』의 발문. 작가에게 서재를 갖추게 해준 『매월당 김시습』.
마지막 4부 ‘금수강산과 초원의 나라’는 금강산 탐승객 1진으로 오른 금강산 여행에 대한 3편의 글과 한국과 인연이 깊은 알타이 투르크계 터키 여행 글이 담겼다. 선생의 눈에 북한은 ‘한 죽은 자를 위하여 산 사람들이 죽어가는 순장殉葬의 땅, 한 죽은 자의 자식을 살게 하기 위하여 죽어가는 사람들의 자식들이 죽어나는 희생의 땅, 금수강산禽獸江山’(291쪽)이었다. 소설가 김주영은 “그는 옳다고 생각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눈 한번 깜짝 않지만, 사람을 끌어안는 광대한 흡인력이 있었다.”고 명천 선생을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