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사회적 농부

대빈창 2024. 6. 5. 07:00

 

책이름 : 사회적 농부

지은이 : 정기석

펴낸곳 : 작은것이아름답다

 

‘마을주의자’ 정기석(1963- )은 그동안 두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농촌공동체에 관한 책을 냈다. 마흔 살에 농촌으로 자발적 하방을 떠난 글쓴이는 마을기업, 살림마을, 공익농민 기본소득, 지역생활기술 직업학교, 농촌유휴시설 사회적 자산은행 등 정책과 제도를 연구하며 농촌공동체를 되살리는 길을 모색했다. 나는 시집 『고고인류학개론 개정증보판』(펄북스, 2018)을 잡았을 뿐이다.  ‘환경운동하는 작가’ 최성각의 책리뷰에서 마을주의자를 처음 만났을 것이다.

작은 외딴섬에서 고적한 삶을 살아가는 나는 미안했다. 군립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했고, 책을 대여했다. 『사회적 농부』는 2014년과 2016년 〈농업연수단〉 일원으로 참가하여 독일․오스트리아의 농부의 삶을 들여다보고, 우리 농업과 농촌공동체의 대안을 찾고 공유하는 기록이었다. 책은 4부로 구성되었고, 19편의 글을 담았다. 부록 ‘먹을거리 정의와 사회적 농부’로 마무리를 지었다.

독일의 농업경영체는 가족농이 90퍼센트를 차지, 나머지 10퍼센트는 가족농들이 모인 생산자조합․농업협동조합. 독일의 농가마다 지급되는 직불금은 연평균 4,000만원으로 농가 소득기준의 60퍼센트가 넘는 수준. 알프스 산악지대로 농사조건이 불리한 스위스는 90퍼센트 이상. 유럽연합농가의 소득대비 직불금 비중이 60퍼센트 넘게 보장되고 식량자급율은 대개 100퍼센트 이상, 농가소득대비 직불금 4퍼센트 수준의 한국의 식량자급율은 50퍼센트, 곡물자급율 24퍼센트(사료 포함)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

11살부터 농업학교에 입학, 농업전문대학 졸업, 농업마스터 수료, 농부자격고시에 합격해야 하는 독일 국민의 2퍼센트 사회적 농부들. 국민의 먹거리, 생명을 책임지는 성직 같은 공익노동을 아무나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의식, ‘자랑스러운 농부’라고 새겨지는 묘비. 독일은 농가마다 농업소득의 80퍼센트를 직불금으로 보정, 농민들이 생활고에 찌들려 농업과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생활을 책임지는 수준. 한국은 2016년 기준 경지면적이 10헥타르 넘는 대농과 0.5헥타르 아래인 소농의 직불금 수령액 차이는 약 50배로 심한 양극화.

유럽연합은 정부가 아닌 농업회의소를 직불금 제도의 시행 주체로 결정, 국제무역기구의 감시와 시비를 피해가려는 고도의 전략. 수입농산물․관행농법 농산물을 일절 팔지 않고 유기물 로컬푸드만 취급하는 스위스 미그로 생협매장․독일 라이파이젠 마트. 한국의 농협은 농민소득을 위한 경제사업보다 농협이 돈 버는 신용사업에 올인. 농민이 아닌 도시민을 주거래 고객으로 ‘이자 수입’에 열중. 경제사업의 목적이 회원조합의 공동이익 증진이 아닌 중앙회 자체의 이익극대화 추구. 회원조합과의 잦은 대립과 마찰.

아들이 자연스럽게 농업을 가업으로 이어 받고, 아들이 없는 집은 딸이 자리를 잇는독일․오스트리아의 가족농. 농산물 수출 세계 2위 유럽연합 농업은 가족농이 생산 70퍼센트를 감당.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조사국 93개국 가운데 80퍼센트 농가가 가족농. 한국은 2020년 말 현재 3헥타르 미만 가족농 숫자가 96만호로 전체농가의 93퍼센트 차지. 생활고로 1년에 평균 3명의 농민이 자살. 독일 국민들이 기꺼이 ‘농민시장’을 찾아 지갑을 여는 것은 농업은 농민을 위한 게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과 합의.

그들은 경쟁력 향상, 소득 증대만 추구해 ‘부자 농민’이 되라고 선동하는 것은 농업과 농촌을 망치는 짓이라는 것을, 대다수 소농들의 토대가 무너지고 농촌을 떠나 도시 난민으로 떠돌 수밖에 없다고 판단. 마을주의자가 말하는 사회적 농부는 사회적 합의와 지지를 받으며 ‘돈 버는 농업’이 아니라 ‘사람 사는 농촌’을 만들며 살아간다. 사회적 농민들이 모여 생태적 농촌을 일구고, 모두가 조금씩 농부인 ‘농부의 나라’를 함께 세운다. 사회적 농부는 ‘모두의 농업’을 일구는 ‘모두의 농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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