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
지은이 : 이문구
펴낸곳 : 열린세상
후기의 첫 머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꼭 20년 전인 1974년’(335쪽)으로 반세기가 지났다. 내가 펼친 책은 1994. 6. 15. 초판1쇄 / 1994. 6. 25. 초판3쇄. 출간된 지 30년이나 묵었다.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은 한국 현대문인 21명에 대한 세상 이야기였다. 「춘강천추사春江千秋詞」의 6쪽부터 「내가 왜 울어야 하나」의 52쪽까지, 문예지의 후기, 본격 취재글, 문집의 발문 및 평문, 조문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길이와 형식의 글들이 묶였다. 글 편마다 삶의 진한 애환과 향수, 한이 오롯이 담겼다.
시인 고은(1933- ) 전북 군산 출생. 1970년대 문학운동의 태동에 선도적인 역할. 민중․민주․민족운동에 이바지해 온 의사적義士的 열정으로 현대적 신화를 자아내는 전설적인 존재. 『뭐냐』, 『순간의 꽃』, 『전원시편』, 『절을 찾아서』. 아동문학가 김도연(1943-2023) 서울 출생. 20여 년을 대한제분 창고에서 근무하며 생산 현장을 생동감 있게 작품으로 형상화. 한 해 걸러 한 권씩 시집 상재하여 8권, 해거리한 해는 동화집 출간 5권.
소설가 김주영(1939- ) 경북 청송 출생. 소년 시절부터 과일장사, 구두닦이, 사환 등 풍찬노숙. 한 달 봉급 봉투에서 외상값 갚고 남은 돈을 몽땅 한국문학사로 송금, 초면부지 선배작가 이호철의 구속으로 고통 받는 가족위로금으로 써달라고.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소설가 박상륭(1940-2017) 전북 장수 출생. 나중 죽어서도 술 없는 천당보다 술 있는 지옥행을 자선할 주선酒仙. 『아겔다마』, 『열명길』, 『죽음의 한 연구』, 『七祖語論』, 『산해기』, 『평심』,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 『神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 『小設法』, 『雜設品』.
시인 박용수(1934-2022) 경남 진양 출생. 문단인 중에서 가장 순진하고 선량한 눈目을 가진 남자. 항상 하나 밖에 모르는 정직한 외곬수. 문인이라면 두려워서 우선 경계부터 하지 않을 수 없는 가장 불울했던 문인. 나중엔 작품발표도 원치 않게 된 문인. 수필가 빈남수(1927-2003) 경남 사천 출생.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이 두드러졌던. 시인 성기조(1934-2023) 충남 홍성 출생. 개인적으로 난세의 후견인․해결사, 문단적으로 가장 합리적이며 가장 확실한 실천적 지도자 가운데 한 분.
소설가․아동문학가 손춘익(1941-2000) 경북 포항 출생. 인간천연기념물로 동인의 손춘익, 서인의 송기숙. 소설가 송기숙(1935-2021) 전남 장흥 출생. 정의正義로 기준을 삼아 세상을 살펴온 어질고 바른 대인大人. 「암태도」, 「자랏골의 비가悲歌」. 소설가 염재만(1934-1995) 경기 수원 출생. 첫 장편소설 『반노叛奴』의 출판으로 군사정권의 검열에 맞서 작가의 기본적인 창작․표현의 자유를 비로소 쟁취한 작가. 평론가 이어령(1934-2022) 충남 아산 출생. 『문학사상』이 다치지 않게 하려는 노파심으로 구속 문인 모금에 금일봉 전달.
소설가 이호철(1932-2016) 함남 원산 출생. 겨레와 국토의 분단을 아우르는 민족문학의 복원에 매진. 「닳아지는 살들」, 「판문점」, 『문단골 사람들』. 소설가 조선작(1940- ) 대전 출생. 남에게 승벽勝癖이나 외고집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겸양지덕의 선비. 시인 조태일(1941-1999) 전남 곡성 출생. 안하무인의 고집불통과 무작정의 뚝심. 「국토」, 「식칼론」. 소설가 한천석(1935- ) 인천 출생. 문학으로써 삶을 엮고 뜻을 다하려는 구도자적인 고절高節한 정신력의 표현.
소설가 황석영(1943- ) 만주 신경 출생. 시대의 모순과 쟁점爭點을 뚜렷하게 파헤치고 온 몸으로 부딪히는 책임감의 작가. 『바리데기』, 『삼포 가는 길』, 『객지』, 『무기의 그늘』, 「한씨연대기」. 소설가 강순식(1943-1989) 전남 광산 출생. 천성이 사람을 믿고 사랑하여, 손위에 겸손하고 손아래에 겸양했던 천성이 과묵한 위인. 시인 박용래(1925-1980)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 눈물을 흘렸던 눈물의 시인. 『박용래 시전집』.
소설가 손소희(1917-1987) 함북 경성 출생. ‘또순이’가 애칭이었던 강인한 의지와 뛰어난 실천력. 소설가 이문희(1933-1990) 충남 보령 출생. 한국문학 2세대 작가군에서 드물게 소설미학의 진수를 보여, 다음 세대에게 이정표를 제시. 이정환(1930-1984) 전북 전주 출생. 스물한 살의 사형수, 1959년 4월 무죄백방無罪白放으로 9년 만에 바깥세상으로 나옴. 자기의 주장과 소신에 투철한 ‘의리의 사나이’ 「까치방」.
명천鳴川 선생의 글은 해학적 인물기행, 문단이면사文壇裏面史의 행장기行狀記로 글 읽는 맛이 그럴듯했다. 이 분야의 내 손을 거쳐 간 책들은 소설가 이호철의 『문단골 사람들』(프리미엄북스, 1997), 시인 윤중호의 『느리게 사는 사람들』(문학동네, 2000), 시인 유용주의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솔, 2000)가 있었다. 환갑을 겨우 넘긴 명천 선생(1941-2003)은 세상을 너무 일찍 떠났다. 책이 출간되었을 때 등장인물 스물한 분 중에서 열여섯 분이 살아계셨다. 3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지금 살아계신 분은 고작 다섯 분이었다. 내가 읽은 책이나 작품을 뒤에 덧붙였다. 『창비 영인본』을 통해 만난 작품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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