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전문가들의 사회

대빈창 2024. 6. 18. 07:00

 

책이름 : 전문가들의 사회

지은이 : 이반 일리치

옮긴이 : 신수열

펴낸곳 : 사월의책

 

피터 버거는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를 “인간 조건에 대한 깊은 통찰 위에서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비판한 사상가”라고 말했다. 도서출판 《사월의책》에서 ‘이반 일리치 전집’이 출간되기 시작했다. 2015년 1차분으로 현대의 일상화된 노동은 상품의 대량생산을 통해 경제를 끊임없이 성장시키기 위한 기획된 노동이라는 『그림자 노동』과 전문가들이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에서 자신들의 권력과 이익을 강화해 온 『전문가들의 사회』를 펴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전문가 사회’였다. 사회생활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전문가들의 지시(?)를 받아야만 했다. 전문가의 견해 없이는 삶을 지탱할 수조차 없다. 전문가에 의해 시민은 ‘고객’으로, 국가는 ‘기업’으로 전락했다. 현대인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격능력을 상실했다. 일리치는 20세기를 ‘인간을 불구화하는 전문가 시대’라고 명명했다. 책은 사회사상가에서 공장노동자에 이르는 5명의 필자의 글을 엮었다.

이반 일리치의 「우리를 불구로 만드는 전문가들」, 전문가 지배 사회는 시민의 자결권을 유예시켜 전문가들에 대한 의존과 예속을 심화시켰다. 전문가 권력이란 사회에 대해 처방을 내릴 수 있는 특권을 말한다. 처방 권력은 산업체제 내에서 이 체제에 대한 통제권을 부여했다. 어빙 케네스 졸라(Irving Kenneth Zola)의 「의료 만능 사회」, 현대 의료는 질병과 치료의 개념을 일상생활 전반으로 확대하여 배타적인 관할권을 주장한다. 심리, 생활상태, 인간관계 등 모든 측면을 의료대상으로 삼았다. 교육․빈곤 같은 사회 문제도 ‘건강상의 문제’로 다루었다. 그저 ‘아픔’에 불과했던 것이 의사가 치료해야 할 ‘질병’이 되면서 사람들은 가벼운 병이나 불편한 정도의 증상까지 대처능력을 상실했다.

존 맥나이트(John Mcknight)의 「서비스 사회의 정치학」, 거대 산업을 이룬 전문가 서비스를 ‘필요’의 경제학으로 다루었다. 현대의 전문가 서비스는 고객 스스로가 내리는 ‘성과’ 특정은 거부하면서도, 유능한 고객이 됨으로써 얻는 가치야말로 시스템의 효용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강변했다. 조너선 캐플런(Jonathan Caplan)의 「변호사와 사법 독점」, 현대의 사회적 현안은 법의 지배라기보다 법률가의 지배아래 놓이게 되었다. 사법 절차와 판결이 언어와 절차면에서 극도로 난해하여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집을 구입하거나, 이혼하거나, 유언장을 작성하는 인간이 살아가는 일상사까지 변호사들이 확고하게 장악했다.

할리 셰이큰(Harley Shaiken)의 「베이비시터가 된 장인들」, 산업현장에서 전문가적인 경영관리 및 산업관리가 어떻게 인간의 자율적 노동을 침해하고 불구로 만드는 사례를 살폈다. 숙련노동자의 기술이 주는 자부심이 그의 독립성을 지켰다. 관리자 측은 사회적으로 중립적인 ‘효율성’을 내세워 숙련노동의 질을 떨어뜨리는 조치들을 끊임없이 취했다. 책의 원제는 『Disabling Professions』는 ‘무능하게 만드는 전문가’라는 의미였다. 현대사회의 전문가 우위 사회는 일반인들을 뒤떨어졌고 쓸모없는 존재로 만드는 이데올로기 위에 구축되었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지식을 해결책으로 내세우면서, 인간의 필요와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권한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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