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그림자 노동

대빈창 2024. 6. 14. 07:00

 

책이름 : 그림자 노동

지은이 : 이반 일리치

옮긴이 : 노승영

펴낸곳 : 사월의책

 

‘20세기 후반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가’ 이반 일리치(Ivan Illich, 1926-2002) 전집의 첫 번째 잡은 책은 『그림자 노동Shadow Work』이다. 이반 일리치의 핵심적 사상을 집약해서 담았다. 1979-1980년 일리치의 강연 원고를 묶었다. 현대의 일상화된 노동은 상품의 대량생산을 통해 경제를 끊임없이 성장시키기 위한 기획된 노동이었다. 다섯 장으로 구성된 책은 ‘그림자 경제shadow economy'라는 새로운 현상에 대해 다루었다. 화폐거래 영역에 속하지 않으면서 산업화 이전 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경제 형태였다.

그림자 노동은 다른 가족 구성원이 임금 취득자로 계속 일할 수 있게 해주는 필요조건이었다. 그림자 노동은 근대의 임금노동과 더불어 나타난 현상이었다. 노동집약적 사회가 존속할 수 있는 조건으로, 그림자 노동이 임금 노동보다 훨씬 근본적이다. 가사노동은 거대한 그림자 노동의 한가지였다. 그림자 노동은 가내 생산의 터전을 빼앗아간 인클로저enslosure로 인해 생긴 대체물이다. 전통적인 자급자족 활동을 임금을 벌기위한 노동으로 내몰았고, 다른 면에서 여성을 집안에 가두는 인클로저였다.

그림자 노동은 산업사회의 전 영역에서 임금 노동을 확대하기 위한 필수적 보완물로서 발전했다. 청소 노동, 통근 과정, 자기 계발, 스펙 강화 등 경제 활동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모든 무고용, 무급의 활동이 그림자 노동이다. 무급 활동의 두 가지는 임금 노동의 보완물로서 그림자 노동과 임금 노동 및 그림자 노동 모두에 경쟁하고 대항하는 자급자족적 노동이 있다. 자급자족 중심의 공동체는 소비재를 사는 대신 사람이 직접 제작을 하고 산업적 도구 대신 공생공락의 도구convivial tools를 이용한다.

선진 산업경제에서 무보수 노동은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가 크지만 사회적으로 가장 만연해 있으면서도 문제시되지 않는 억압적 차별의 기제였다. 노동가치설은 집안일의 가치를 낮춰 경제적으로 의존적․비생산적으로 만들어 여성에게 전담시켰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충실한 지원자로 전락했고, 자원봉사하는 보금자리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었다. 여성의 경제적 지위 박탈은 사회가 가정 밖에서 이루어진 노동의 생산물을 통해 가정 내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켜 주게 되었다.

오늘날 여성이 불구의 처지가 된 것은 경제적인 면에서 보수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급자족의 측면에서 무익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 노동은 자발적으로 지원하거나 발탁되어 행하는 노동이지만 그림자 노동은 나면서부터 결정되고 부여되는 노동이다. 즉 상품사회의 두 노동은 처음부터 억압받는 여성과 부양의무를 짊어진 남성이라는 성차별 구조가 만들어졌다. 책은 그림자 노동의 역사를 통해 성장주의에 찌든 현대를 고발하고 인간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삶을 회복하자는 선언이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모두  (53) 2024.06.19
전문가들의 사회  (40) 2024.06.18
나를 부르는 숲  (45) 2024.06.13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  (48) 2024.06.12
회화의 역사  (52) 2024.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