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우리 모두

대빈창 2024. 6. 19. 07:00

 

책이름 : 우리 모두

지은이 : 레이먼드 카버

옮긴이 : 고영범

펴낸곳 : 문학동네

 

(······)/내 창문이 삼 인치쯤 내려져 있었어요./겨우 삼 인치. 내가 마지막으로 한번 더 /외설스러운 고함을 질렀어요. 그러고는/한 녀석이 무언가를 던지려고 와인드업 하는 걸/ 보았죠. (······)/아마 친구들을 향해/고개를 돌리고 웃고 있었거든요./무언가가 내 옆머리를 강타해 고막을 터뜨린 뒤 / 원래 모양 그대로 내 무릎 위에 떨어졌던 그때/말이죠. 얼음과 눈을 공 모양으로 뭉쳐서 만든/놈이었어요. 그 고통은 정말 엄청났어요./그리고 그 창피함이란./두려움도 고통도 모른다고 자부하는 놈들이/재수 더럽게 없다, 황당하다./백만 분의 일도 안 되는 확률이야?/따위의 고함을 지르고 있는 앞에서/눈물을 흘리기 시작한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습니다./그걸 던진 놈은, 주변에서 환호성을 지르고/등을 두들겨주고 하는 동안 무척이나 놀란 한편/자랑스러웠을 겁니다./젖은 두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았겠죠./(······)

 

「발사체」(300-302쪽)의 일부분이다. 부제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였다. 기억이 명확치 않지만 분명 어디선가 읽었다. 하루키가 카버의 단편 「대성당」을 극찬한 어느 글이었을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1938-1988)는 1980년대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이끈 소설가였다. 신생 도서관의 시집을 일별하다 눈에 익은 이름을 발견했고, 책을 대여했다.

638쪽의 묵직한 양장본은 시전집이었다. 카버는 단편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대성당』을 펴냈다. 1983년 발표한 『대성당』이 문단과 독자를 사로잡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후 그는 죽을 때까지 5년 동안 시만 썼다. 『불』(1983), 『물이 다른 물과 합쳐지는 곳』(1985), 『울트라마린』(1986)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사망 이듬해 유고시집 『폭포로 가는 길』(1989), 미발표 시 모음집 『영웅담은 제발 이제 그만』(1991)까지 모두 다섯 권 분량의 시집을 한 권에 담은 것이 『우리 모두』였다.

표제는 「스위스에서」(211-214쪽)의 마지막 연에서 따왔다. 「텔아비브와 미시시피강에서의 생활」(61-63쪽)은 마크 트웨인이 1883년에 발표한 회고록이었다. 미시시피강 증기선의 조타수 조수로 일을 배우면서 뉴올리언스에서 세인트폴까지의 여행기를 담았다. 배가 운항할 수 있는 안전한 수심은 12피트로 mark twain이라고 한다. 본명이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였다.

레이먼드 카버는 생전 인터뷰에서 말했다. “저는 소설과 시를 같은 방법으로 쓰고, 그 효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장편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언어와 감정의 압축이 있죠. 제가 자주 하는 말인데, 단편소설과 시는 단편소설과 장편소설보다 가까운 관계입니다.” 『우리 모두』는 국내 최초의 레이먼드 카버의 시집이었다. 그는 문학사에서 현대 단편소설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작가는 독보적이고 탁월한 단편소설의 ‘미니멀리즘의 대가’로 기억되고 있었다. 평생 단편소설과 시 만을 쓴 작가는, 전 세계 젊은 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열성팬을 자처했다. 피치 못하게 뭍에 나갈 일이 생겼다. 문상을 다녀오면서 일주일 만에 군립도서관에 들렀다. 7일 동안 읽은 세 권의 책을 반납하고,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빌려왔다. 활자중독자에게 궁금증은 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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