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나를 부르는 숲

대빈창 2024. 6. 13. 07:00

 

책이름 : 나를 부르는 숲

지은이 : 빌 브라이슨

옮긴이 : 홍은택

펴낸곳 : 까치

 

『나를 부르는 숲』은 ‘세상에서 가장 유니크한 여행 작가’로 정평이 난 빌 브라이슨(Bill Bryson, 1951- )의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기였다. 나에게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이어 작가의 두 번째 책이었다. 빌 브라이슨의 책은 이 땅에서 20여 종 이상 번역되었다. 3주 만에 군립도서관에 발걸음을 했다. 마음에 두었던 책이 그새 대출되었다. 그때 작가가 떠올랐고, 검색창에 이름을 입력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Appalachian Trail, AT)은 미국 동부해안을 따라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세계 최강의 도보길로 3,360킬로미터에 걸쳐 야생 숲이 펼쳐진 산악트레킹이었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 종주등반이 대략 1,400 킬로미터로 두 배가 넘었다.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까지 14개 주를 관통하고 1,500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350개였다. 트레일을 종주하는데 5개월이 걸리고, 500만 번의 걸음을 대딛어야 했다.

‘뉴햄프셔 주의 작은 마을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우연히 마을 끝에서 숲으로 사라지는 길을 발견했다.’(17쪽) 첫 문장이다. 작가와 AT의 첫 만남이었다. 작가의 등반 동료는 고교 동창으로 한때 마약소지죄로 18개월을 복역했고 알콜중독자였던, 막노동으로 밥을 버는 배불뚝이 카츠였다. 1996년 3월 9일 출발했다. 조지아주 역사상 가장 추운 날씨로 영하 11.6℃였다. 봉우리를 향해 30분쯤 걸음을 옮기자 눈알이 튀어나오고 질식할 것 같았다. 카츠는 벌써 뒤처져 헐떡였다. 숲 속의 잿빛 하늘과 무쇠 같은 땅 위로 헐벗은 나무들이 춥고 고요한 세계를 뚫고 지나갔다.

빅 버트산의 암벽에 난 좁은 길은 폭이 30-40센티미터로 한쪽은 낭떠러지, 한 쪽은 수직 암벽이었다. 길바닥은 얼어붙었고 눈까지 쌓였다. 1킬로미터를 헤쳐 나오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뚫고 죽기 전에 ‘빅 스프링 대피소’에 간신히 도착했다. 국립공원관리국은 수십 년 동안 자연에 개입하여 엉망으로 만들더니, 개입이 필요한 지금은 더 이상 자연에 개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1948년 얼 셰이퍼라는 청년이 한 계절에, 4월부터 8월까지 123일 동안 하루에 평균 27.2킬로미터를 걸어 AT를 종주한 첫 번째 인물이었다. 그의 정복이후 반세기 동안 약 4,000명이 종주에 성공했다. 셰넌도어공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공원의 길이가 160여 킬로미터였다. 폭은 1.6-3.2킬로미터 사이로 매년 200만 명의 방문객들이 능선을 따라 독특하게 형성된 높은 회랑 같은 숲길을 가득 메웠다. 6주일반 동안의 산행으로 800킬로미터, 125만 발자국을 걸었다. 카츠가 다모인의 여름철 공사판으로 돌아가면서 1부는 끝났다.

2부가 시작되면서, 작가는 혼자 산으로 통근했다. 매일아침 새벽에 일어나 배낭에 점심을 넣고 코네티컷 강을 건너 버몬트로 갔다. 차를 주차하고 큰 산을 오르거나 푸른 언덕을 오르내렸다. 스트랜드 산과 브롬리 산, 프로스펙 록, 스푸루스 피크, 베이커 피크, 그리피스 레이크, 화이트 록스 산, 버튼 힐, 킬링턴 파크, 기포드우즈 주립공원, 큄비 산, 다슬 힐을 넘었다. 밑에서 올라오는 북상 스루 하이커들이 버몬트 주까지 오면 거리상으로 AT의 80퍼센트를 걸어온 셈이다. 하지만 품을 들인 것으로 따지면 반 밖에 안된다. 화이트 산맥을 관통하는 뉴햄프셔 주의 259킬로미터 구간에는 해발 900미터가 넘는 높은 고봉이 35개나 되었다.

8월의 찌는듯한 무더위. 카츠가 나와 함께 메인주의 헌드레드 마일 윌더니스를 종주하기 위해 돌아왔다. 메인 주에 있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452킬로미터는 에베레스트를 세 번 넘는 것과 마찬가지의 3만 미터가 오르막길이었다. 아한대의 숲길 160킬로미터는 AT에서 가장 외진 구간이었다. 조그만 마을 몬슨의 가장 유명한 숙소 ‘셔'에서 트레일을 시작했다. 클라우드 호수에서 물병 3개를 채우고 돌아오자 카츠가 보이지 않았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카츠없이 혼자 대피소에서 묵었다. 다음날 5시부터 카츠를 찾아 헤매었다. 기적적으로 웨스트 체어백 호수로 갈라지는 지점의 바위에 걸터앉은 카츠를 발견했다.

진이 빠졌고, 더 이상 의욕이 나지 않았다. 둘은 트레일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숲을 걸어내려오면 이틀이 걸릴 것이다. 운 좋게 벌목꾼차를 얻어 탔고, 작은 마을 밀로에 닿아 비숍 하숙집에 들었다. 작가는 1,392킬로미터를 주파했다. 트레일의 39.1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3,520킬로미터를 다 걷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시도했다. 카츠의 말이 옳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던 것이다.’(389쪽) 마지막 단락이었다.

『나를 부르는 숲』은 2008년 〈동아일보사〉에서 초판본이 나왔다, 내가 잡은 책은 〈까치글방〉에서 2018년 출간된 개역판이었다. 책을 열면 32개 언론의 추천사가 눈에 들어왔다. 가장 마음에 든 글은 『시카고 선―타임즈』의 “빌 브라이슨은 헤어 드라이어에 달라붙은 보풀이나 해열제에 대해서 에세이를 쓰면서도 우리를 웃길 수 있는 사람이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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