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오십 미터
지은이 : 허연
펴낸곳 : 문학과 지성사
시집․시선집 - 『불온한 검은 피』, 『천국은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산문집 - 『그리고 한 문장이 남았다』,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그동안 내가 잡은 시인 허연(許然, 1966- )의 책들이다. 시인은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오십 미터』는 등단 25주년을 맞은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었다. 3부에 나뉘어 72편이 실렸다. 시집에는 2013년 〈현대문학상〉 수상작 「북회귀선에서 온 소포」외 6편, 〈시작작품상〉 수상작 「장미의 나날」이 수록되었다.
연작시로 「FILM」, 「마지막 무개화차」, 「Republic」, 「Nile」이 2편씩, 「아나키스트 트럭」이 3편이 실렸다. 문학평론가 양경언은 해설 「시인의 업業」을 이렇게 시작했다. “허연을 읽는 일이란 시인은 어떤 존재일 수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129쪽)라고. 그리고 표제작 「오십 미터」에서 세 가지 감상 포인트를 짚었다. 한 편의 연시戀詩, 중요한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의 심정이 담긴 시, ‘너’를 ‘시詩’로 치환하여 읽어도 맥락이 통한다고. 뒤표지에 실린 시의 1연이다.
구름은 신비스러운 사상이다 / 구름의 이름을 지은 사람 / 자신보다 구름이 주목받기를 원한 사람 / 구름을 가져다 이야기를 만든 그 사람 생각을 해봤다.
낯이 익었다.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는 시인이 책읽기를 통해서 만난 사람들의 , 정수가 담긴 문장을 뽑아냈다. 부제가 ‘지적이고 행복한 삶을 위한 문장의 향기’였다. 마지막 글의 인물이 루크 하우드(Luke Howard, 1772-1864)였다. 1803년에 태어난 그는 영국의 약사였다. 오늘날까지 통용되는 구름 분류 체계를 개발했다. 일반적인 구름의 형태와 구름이 형성되는 고도에 따라 구름을 구분했다. 마지막은 「거진」(19쪽)의 전문이다.
당신이 사라진 주홍빛 바다에서 갈매기 떼 울음이 파도와 함께 밀려가선 오지 않는다. 막 비추기 시작한 등대와 약한 불빛이 훑듯이 나를 지워버리고 파도 소리는 점점 밤의 전부가 됐다. 밤이 분명한데도 밤은 어디론가 가버렸고 파도만이 남았다. 밤은 그렇게 파도만을 남겼다.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내내 파도 위로 가끔 별똥이 떨어졌다. 바스락거리던 조개들이 죽음이 잠시 빛났고 이내 파도에 묻혔다 소식은 없었다. 밤에 생긴 상처는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 도망치지 못했다 거진.
p. s 그해 겨울 그녀와 강원 고성 최북단항 거진에 갔었다. 겨울철 별미 ‘도치알탕’을 소문난 맛집 〈제비호 식당〉에서 먹었다. 묵은지를 곁들인 시뻘건 국물이 얼큰했다. 되돌아오는 길의 미시령고개. 앞이 안보일 정도로 함박눈이 퍼부었다. 그녀는 지금 마음과 몸이 많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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