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은이 : 룰루 밀러
옮긴이 : 정지인
펴낸곳 : 곰출판
19세기 생물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David Starr Jordan, 1872-1931)은 당대 인류에게 알려진 어류 중 5분의 1을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견했다. 그는 두 권짜리 회고록 『한 남자의 나날들The Days of a Man』을 남겼다. 과학전문기자 룰루 밀러(Lula Miller)는 혼돈에 맞서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에 끌려 그의 삶을 추적했다. 데이비드는 22세 때, 유명한 박물학자 루이 아가시Louis Agassiz의 ‘해변에서 강의하는 자연사 수업’에 끌려 메사추세츠 해안의 작은 섬 페니키스에 발을 들였다. 1873년 7월 8일, 젊은 박물학자 50명과 함께.
어린 룰루 밀러는 가족 휴가로 페니키스 섬에서 겨우 80킬로미터 떨어진 웰프리드 섬에 갔었다. 그때 생화학자 아버지는 딸의 질문에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알려주었다. 아버지의 실험실 책상위에는 다윈의 『종의 기원』의 마지막 문장이 적혀있었다.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어떤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데이비드는 인디애나 대학의 종신교수가 되었다. 서른네 살에 학장이 된 그는 전국에서 가장 젊었다. 1883년 과학관 데이비드 실험실에 벼락이 때렸다. 이름도 붙여지지않은 에탄올 유리단지에 담긴 수천마리의 물고기가 남김없이 소실되었다. 2년 뒤 아내가 폐렴으로 죽었다. 2년만에 데이비드는 대학 2년생 새 아내 제시를 얻어 물고기 수집 원정에 나섰다.
1891년 갓 마흔 살의 그는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학장으로 취임했다. 해외 어류 원정수집에 나섰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에 리히터 규모 7.9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시의 상당 부분이 붕괴되면서 3천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그가 수집한 물고기들이 바닥에 떨어져 부패하고 있었다. 30년의 삶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포기하지 않았다. 밤낮으로 호스로 물을 뿌렸고, 에탄올이 도착했다. 기억이 떠오른 물고기의 몸에 직접 표식을 매달았다. 결국 자신의 컬렉션의 많은 부분을 되살렸다.
스탠퍼드대 창업자 제인은 독살로 죽음을 맞았다. 샌프란시스코 자택의 독이 풀린 생수통 물을 들이켰으나 재빨리 토해내 살 수 있었다. 하와이 여행 중 소화제 베이킹소다에 섞인 독은 피할 수 없었다. 2003년 의학박사 로버트 W. P. 커틀러는 철저한 조사 끝에 제인 스탠퍼드의 죽음은, 데이비드가 독살을 은폐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스트리크닌은 데이비드가 조수웅덩이의 작은 물고기를 잡을 때 썼던 독약이었다.
우생학을 세계 최초로 국가 정책으로 삼은 나라가 미국이었다. 데이비드는 벌써 1880년대에 인디애나 대학 강의에서 가르쳤다. 그는 죽는 날까지 열광적인 우생학자였다. 룰루 밀러는 수백 에이커에 60개의 건물이 버려진 버지니아주 간질환자 및 정신박약자 수용소를 찾았다. 애나는 일곱 살에 부적합자로 끌려가 폭력과 강간, 열아홉 살에 강제불임 수술을 당했다. 룰루 밀러는 애나의 삶을 돌이키며, 어릴적 아버지가 한 말에 대한 반박을 찾아냈다. “우리는 중요해요. 우리는 중요하다고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나이 여든 살에 죽었다. 스탠퍼드대학 도서관에 브론즈 흉상이, 심리학부 건물에 그의 이름이, 화려한 장식의 초상화들이. 시에라네바다산맥 한가운데 해발 4천 피트가 넘는 산봉우리 조던 피크. 고등학교 두 군데, 정부의 선박 한 척, 한 도시의 대로, 인디애나의 강 하나, 그리고 알래스카․유타의 호수에 데이비드 이름이 붙었다. 명망 있는 과학상과 백 가지가 넘는 물고기 종에도.
인류에게 알려진 물고기 종은 1만2천-1만3천종이라고 한다. 데이비드와 제자들이 발견한 것이 2500종이라고 추산되었다. 하지만 1880년 태평양 연안 탐사 때 중국인과 중국계 미국어부들이 잡은 가장 좋은 물고기들을 협박으로 빼앗았다. 일본의 바위 웅덩이에서 확보한 100가지 이상의 새로운 종 가운데 3분의 2는 모두 일본 소년들이 잡은 것이다. 데이비드는 포름알데히드와 에탄올 알레르기로 그의 작업에 심각한 장애가 있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기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고, 상처하나 입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었다.
룰루 밀러는 캐럴 계숙 윤Carol Kaesuk Yoon의 경이로운 자연책 『자연에 이름 붙이기Naming Nature』를 접하면서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1980년대 분지학자들은 생명의 진정한 상호 연관을 밝혀내면서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룰루 밀러는 에필로그에서 말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2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