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훔쳐가는 노래

대빈창 2024. 6. 28. 07:00

 

책이름 : 훔쳐가는 노래

지은이 : 진은영

펴낸곳 : 창비

 

3주 간격으로 뭍에 나갈 때마다 군립도서관에 둘러 책을 대여했다. 여덟․아홉 권의 빌린 책 중에 한두 권의 시집을 챙겼다. 나의 독서여정에서 한 달에 두세 권의 시집을 펼치게 된다. 나에게 시집은 세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온라인 서적을 통해 손에 넣는 십 여 명의 시인. 도서관에 시집이 비치되어 있으면 대여하는 시인. 그 외 관심 밖의 시인일 것이다. 시인은 두 번째 부류에 속했다. 그의 첫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은 군립도서관에서 빌렸다. 신생도서관 《지혜의숲》에서 세 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를 빌렸다. 《길상작은도서관》의 근작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를 대여목록에 올렸다.

시인은 2000년 『문학과사회』 봄호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아름답고 동시에 정치적인 시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몇 안되는 시인”이라고 평했다. 평단에서는 시인을 미래파(2000년 전후 등단한 시인들이 기존 서정시와 형식, 화법이 다른 형태로 구사한 시로 난해함을 특징으로 꼽는)로 말하기 방식에 방점을 찍었다.

시집은 1부 ‘이 모든 것’은 시인의 정체성을 15편, 2부 ‘공정한 물물교환’은 새로운 은유의 방식을 17편, 3부 ‘지난해의 비밀’은 문학과 정치의 고민을 담은 18편의 시로 구성되었다. 모리스 블량쇼의 『문학의 공간』, 세사르 바예호의 『1936년 시월, 파리』, 안토니오 무뇨스 몰리나의 『폴란드 기병』에서 따온 잠언으로 제사題詞를 삼아 각 부의 방향을 제시했다.

시집은 천상병 시인의 20주기를 맞은, 제15회 천상병 시 문학상 수상작이었다. 10년 이상의 경력과 최근 1년새 시집을 발간한 시인이 심사 대상이었다. 시집은 해설과 발문이 없었다. 뒤표지에 시인 심보선의 표사가 실렸을 뿐이다. 『훔쳐가는 노래』는 ‘낯선 이미지와 아름다운 비유를 구사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한 모더니스트’ 시인이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정치․사회적 위기에 대한 응전방식을 보여주었다. 「망각은 없다」는 4대강 사업을, 「오래된 이야기」는 용산 참사를, 「그 머나먼」은 박노해와 혁명을. 마지막은 부제로 ‘시인 김남주가 김진숙에게’가 붙은 한진중공업 파업의   「Bucket List」(100-103쪽)의 일부분이다.

 

이보오 스물한살의 용접공 아가씨/다섯 손가락에 불꽃을 달고 강철의 굳은 표정을 멋대로 자르고 이어대는/사랑스런 당신/당신은 먼 후일/더 높은 곳에 오르게 될 것이오/······/이보시오 영리한 아가씨/당신은 서로 다른 풍경 뒤에 놓인 동일한 원인을 잘 알고 있다오//수빅의 노동자를 착취하려는 손길이/아(亞)제국의 노동자를/제국과 아(亞)제국의 이 어두운 거리들에 물끄러미 세워 놓는다는 것을/······/당신을/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사람들은 점점 높아가는 가을의 고요하고 무거운 하늘을 올려다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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