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식물기

대빈창 2024. 6. 25. 07:00

 

책이름 : 식물기

지은이 : 호시노 도모유키

옮긴이 : 김석희

펴낸곳 : 그물코

 

생태도서출판사 〈그물코〉의 책을 검색하다 만난 소설집이다. ‘국가를 흔들리게 하는 규모의 소설을 쓰는 작가’를 이렇게 만나다니. 노벨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자신의 소설적 후계자로 호시노 도모유키(星野 智幸, 1965- )를 지목하며 한 말이다. 표제 『식물기』를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記를 떠올렸다. 아니다. 죽은 자를 기리는 의미의 忌였다. 소설집은 열한 편의 단편을 담았다. 특이하게 「남은 씨앗―에필로그」가 마지막 작품 앞에 실렸다.

소설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말했다. “다른 생명체를 먹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는 정말 매력적이지 않습니까?”(9쪽) 「피서하는 나무」는 유리오네 가족은 버려진 강아지를 만난다. ‘오노농’이라 이름 지은 개가 암으로 죽자 정원 구석에 묻었고, 오노 나무를 무덤에 심는다. 육상부에서 만난 초등학교 동창 나쓰소도 반인반견半人半犬의 아이덴디티였다. 오노나무가 관상용으로 인기를 끌었고 세력을 넓혀갔다. 이상기후로 도망친 사람들이 정착한 어디서나 오노나무가 자랐다.

「디어 프루던스」는 비틀스의 노래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 빌라 원룸에 혼자 살던 예순일곱 살의 아줌마는 자신이 살던 집 정원의 풀을 먹는 애벌레가 되었다. 집안에 틀어박힌 고독과 외로움의 이웃집 아이 시리고미짱을 대화로 바깥세상으로 이끌어낸다. 아이는 민들레 솜털이 되어 날아올랐다. 「기억하는 밀림」은 영화배우 히스 레저의 죽음에 충격 받아 떠난 여행에서 나는 소라히코를 만난다. 그녀는 가까운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화분을 샀다. 그녀가 죽고 유품에서 히스 화분를 가져와 베란다에 놓았다. 꽃봉오리가 꽃잎을 펼칠 때마다 소라히코의 모습이 빛이 되어 떠올랐다.

「스킨 플랜트」는 사람과 풀의 DNA를 융합한 스킨 플랜트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한다. 인간의 몸에 꽃이 피어나며 나타난 리스크는 성욕의 소멸이었다. 스킨 플랜트가 자란 식물이 발견되었고, 어린 인간의 모습을 한 녹색열매가 달렸다. 생식기능을 포기한고 꽃을 선택한 신인류의 탄생이었다. 「고사리태엽」은 생명공학의 발달은 인간의 식물전환수술이 가능했다. 가공의 보행식물 트리피드를 동경한 호시노는 수술을 받았다. 동력은 고사리태엽이다. 뒤늦게 그는 깨닫는다. 고사리태엽이 자신의 몸을 꽃꽂이 한 것이라고.

「식물전환수술을 받기로 한 전 여자 친구를 설득하는 편지」는 ‘인류 녹화 글로벌 플랜’ 단체의 식물전환수술을 받으려는 생태주의자 전 여친 사키코를 나이 들어 하라고 말리는 엽편소설. 「인형초」와 「시조 독말풀」은 하이퍼 식물들의 음모를 폭로하여 제압하는 특수공작원 ‘네오 가드너’의 이야기. 인형초는 잎을 펼친 모습이 액막이 인형을 닮아 붙여진 이름. 우수한 공작원 기코는 식물 반란을 진압하지만 식물들 편으로 돌아선다. 3인의 네오가드너는 독말풀의 봉기를 제압하려 출동했으나 실패한다.

「춤추는 소나무」는 납치 괴담으로 경내 진입이 금지된 오도리마쓰踊松 신사에 새해 참배를 간 초등학교 졸업학년 친구 넷의 이야기. 아름드리 두 그루 소나무가 얽힌 도리이의 신사 이름이 ‘춤추는 소나무’였다. 가는 길에서 만난 케일 아주머니를 통해 세상 만물이 신神이라는 깨우침을 얻는다. 「벚꽃 낙원」은 식물의 전당 ‘가라시야’의 상급 어드바이저 가모가와 선생의 권유로 벚나무 숲 탐험에 나선 미즈마야와 미쓰야. 벚꽃 눈보라 속으로 사라진 미쓰야. 벚나무 숲은 사람들이 변한 것이다. 미쓰야가 변한 벚나무 열매를 삼키자 미즈마야도 한 그루 벚나무로 변해갔다.

「남은 씨앗―에필로그」는 소설가가 아르바이트로 ‘시든 꽃집’이라는 의미의 ‘가라시야’에 일자리를 구하면서 식물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는 경험. 「샤베란」은 특허식물 노래하는 억새 글라그라가 독점 생산되면서 소리 나는 식물개발 붐이 일었다. 말을 걸면 대답을 하는 샤베란까지 등장했다. 노래하는 억새 자생지 평원에서 야영하다 새벽에 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의미도 감동도 없는 말에 인간의 언어가 잠식당했다.

옮긴이가 낯익었다. 80년대 신춘문예 소설당선작 「이상의 날개」로 기억되는 번역가와 동명이인이었다. 옮긴이는 호시노의 첫 작품집 『인간 은행』도 엮어 옮겼다. 그는 표지그림을 화가이기도 했다. 소설집은 호시노 도모유키가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새로운 장르를 구축한 ‘식물소설’ 모음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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