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살림의 경제학

대빈창 2011. 5. 9. 06:18

 

 

 

책이름 : 살림의 경제학

지은이 : 강수돌

펴낸곳 : 인물과사상사

 

이 책의 저자를 나는 정기구독하는 격월간지 녹색평론에서 몇 편의 단편적인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지금은 세종시로 바뀐 고려대 조치원 캠퍼스의 경영학부 교수다. 그런데 이력을 소개하는 란에는 교수라는 그럴듯한 직함보다,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신안1리 이장'이라는 별볼 일없는 특이한 경력을 앞세우는게 아닌가. 아니 교수가 동네 이장일을 보다니. 아! 거기에는 이 땅의 막가파식 삽질경제가 교수를 이장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숨어 있었다. '자연이 최고의 교과서'라 믿는 저자는 시골에 귀틀집을 짖고, 온 가족이 이사를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고압 송전선과 고층 아파트 건립 공사가 추진된다는 날벼락이 떨어진다.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난개발을 막는 투쟁에 나섰다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저자는 이장으로 추대된 것이다.

이 책은 선진국이 '사다리 걷어차기'를 한다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과연 그 사다리를 올라갈 가치가 있는 것인지 우리에게 되묻는다. 이 땅의 삶은 희망보다 절망만이 팽배하는 현실에 대한 괴로움으로 신음과 절규가 난무한다. ADD증후군, 즉 일종의 정신적 무감각 상태로 아무런 희망도, 정서도, 에너지도, 신뢰도, 비전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빠져 들어 '집단 우울증'을 앓고 있다. 현재의 학교 시스템은 '쓸모있는 노동력'을 만드는 공장으로 전락했고, 집이나 땅을 생명살림의 토대로 공동자산으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을 위한 재산증식과 투기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천박한 태도, 아니 도착증 환자들의 소굴이 되었다. 이러한 '집단적 성장중독증'은 해방직후 미군정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반자본주의 세력이 폭력적으로 척결되는 과정에서 한국사회 전체가 집단적 트라우마 - 레드 컴플렉스 - 를 경험한데서 연유한다. 이러한 집단적 상흔은 건강하게 극복되지 못하고 한국인 특유의 생존전략으로 '강자와의 동일시'로 체화된다. 결국 강자의 논리를 내면화하면서 강자에게는 무릎꿇고, 약자를 무시하고 짓밟는 집단심리가 형성된 것이다. 

현재 65억의 세계인구가 미국 중산층과 같은 생할양식을 추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빈곤'문제는 '부자되기'가 아니라, '소박하게 살기'만이 해결 가능하다. 삶의 모든 문제가 '돈'으로 귀결되는 현재의 자본주의는 인간을 단지 노동력으로 취급하고, 자연을 단지 물적자원으로 보며, 경제성장을 이유로 노동압박을 가하며, 경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강화한다. 여기서 저자는 좋지 않은 원료를 써서 만든 파이는 제아무리 크게 만들어 공정하게 나눠먹는다 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또한 질 나쁜 파이를 먹으면 건강하지 못하므로 진정 행복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의 희생과 생태계 파괴라는 대자연의 희생 위에 만들어진 파이,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억압하고 과로함으로써 만들어지는 파이는 아무리 화려하고 큼직해도 결코 건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요즘 이 땅의 각 정치세력이 선점하려고 애쓰는 '복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알아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열망하는 복지국가 시스템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그것은 복지국가의 물질적 토대가 '자국노동의 희생, 제3세계 노동자의 수탈, 전 세계적 자연 생태계 파괴' 등이라는데 있다. 여기서 후진국의 궁핍과 선진국의 복지는 동전의 양면으로 이면에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수탈관계가 숨어있다. 이런 통찰은 복지와 풍요의 이면에는 사회적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저자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이의 근원적 관계를 회복하는 시스템으로 자율적 생태공동체를 대안으로 내세운다. 나는 책씻이를 하고 이 책을 사회·경제 코너에서 생태·환경 코너로 자리를 옮겨 주었다. 생태환경에 대한 학습체계로 이 책의 뒤에 붙은 각주와 참고문헌이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해의 작은 섬에서 자칭 '얼치기 생태주의자'로 삶을 영위하는 나에게 어깨를 다독이며 용기를 불어넣어 준 아주 유익한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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