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아름다운 마무리
지은이 : 법정
펴낸곳 : 문학의숲
이 책을 구입하고 손에 잡기까지 고작 2년여의 세월이 흘렀거만 까마득한 시간의 나락에 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책을 2009년 초에 구입했다. 그동안 법정스님의 글은 '무소유'와 '홀로 사는 즐거움'을 잡았다. 2010년 3월 11일 법정은 길상사에서 입적하면서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고 말하고 '관과 수의없이, 장례의식없이 평소 승복 차림으로 다비하고 사리를 찾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그동안 풀어놓은 말빛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는 말을 남겼다. 자연주의 사상가이자 단순하고 청빈한 삶의 실천가였던 스님의 유언이었다. 하지만 지고지순한 스님의 뜻을 따르기에는 속세의 더러움은 진흙탕이었다. 스님의 입적이후 책 판매고가 다섯배이상 증가하면서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스님의 책만 11권이 올랐다. 가히 법정스님 유작 읽기의 열풍이었다. '달을 보라고 가리킨 손가락만 쳐다'보는 중생들이었다. 출판사 측들은 책을 이렇게 폐기하는 것은 스님의 진정한 뜻이 아니라고 떠 벌였다. 그럴까. 솔직히 나는 그들의 행태에서 돈 냄새에 회가 동한 장사치들의 몰골을 떠올렸다. 올초 스님의 유지를 잇는 길상사와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의 내분도 탐탁치 않다. 주지이자 이사장이었던 덕현스님이 돌연 사퇴를 한 것이다. 무소유의 삶을 살다가신 스님의 유지를 받듣다는 이들이 추모 1주기를 지내기도 전에 갈등이 불거진 것이다. 무참한 노릇이다. 이런 일련의 부끄러운 세월 앞에 나는 이제야 책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스님은 한국전쟁의 비극 앞에서 삶과 죽음을 고뇌하다 대학 재학 중 출가한다. 송광사의 암자인 불일암을 혼자 짓고 수행하다, 찾는 이들이 늘자, 17년전 강원도 두메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수행자의 길을 걷는다.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으로 한달에 한번 쓰는 짧은 산문을 길상사 소식지 '맑고 향기롭게'에 실었는데 그 글을 엮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스님은 책에서 얼음을 깨어 차를 달이고, 텃밭 채소를 가꾸고, 막가파식 토건개발을 우려하고, 사라진 새들을 걱정하고, 소로우의 월든 호숫가를 찾고, 청도 운문사의 은행나무, 반송, 비로전의 부처님을 찾는다. 책을 읽어나가다 나는 '약한 것이 강한 것에 먹히는 세상에서'의 한 단락에 눈길이 한참 머물렀다. 화학제품 회사가 아프리카 어느 부족에게 비료를 주었다. 예년에 없던 큰 풍작이 들자 농부들은 부족의 지혜로운 눈먼 추장을 찾아갔다. 추장은 이렇게 말했다. '좋은 일이다. 내년에는 밭의 반만 갈아라.' 보잘것없는 도구로 나무를 베는 원주민에게 이주한 백인들은 큰 도끼를 선물했다. 다음해 백인이 찾아가자, 마을의 추장은 말했다. '당신들이 이 도끼를 보내 준 다음부터 우리는 더 많은 휴식을 누릴 수 있었다.' 원주민과 인디언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무엇이 필요한 지를 잘 알았고, 필요 이상의 것은 원치 않았다. 스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맑고 향기롭게' 하는 삶의 진실은 위에 든 일화 속의 숨은 가르침이 아닐까. 스님은 책을 내기 1년전 큰 병을 앓으셨다. 그러기에 이 말이 독자들에게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이다.' 나는 어떻게 아름다운 마무리를 지을수 있을까. 내가 묻힐 무덤자리는 마련했다. 뽕나무다. 화장해서 뽕나무에 수목장을 하고, 아는 이가 손바닥만한 비석이라도 세워주기를 바란다. 지갑에는 '장기기증희망등록증'이 담겨있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좋은 나의 집은 서해의 작은 섬의 도서관이 되었으면 한다. 나의 손때가 묻은 책들이 진열되었으면 더욱 좋겠다. 죽음의 과정은 스콧 니어링처럼 병원이 아닌 나의 집에서 편안히 눈을 감고 싶다. 그리고 나의 적은 재산은 가난한 이들에게 돌려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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