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사람·건축·도시

대빈창 2011. 5. 25. 05:30

 

 

책이름 : 사람·건축·도시

지은이 : 정기용

펴낸곳 : 현실문화

 

작년 초겨울 작은 금액이나마 후원해 온 '풀평연'에서 발행하는 웹진에서 저자의 토막글을 처음 대했다. 웹진의 제목은 '병마와 싸우고 계신 어떤 건축가의 이야기'로 전시회에서 저자의 15분 가량의 짧은 강연을 들은 필자가 느낌을 적은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건축가를 '공간 속에 새로운 창조물을 구성하여 사람들이 그 안에서 살고, 쉬면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록 부드럽게 일깨워주는 예술가'라고 정의했다.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건축가가 이렇게 짧게 강연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건강 때문이었다. 저자는 6년간 투병중인데도 어렵게 강의에 나선 것이다. 그러고보니 저자의 작품 중에 2000년 '춘천 자두나무집'이 눈에 들어온다. 화가인 정상명은 큰딸을 잃고, 쉰 살의 나이에 환경운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큰 딸이 묻힌 장소가 바로 '춘천 자두나무집'이다. 그리고 이번 웹진의 필자는 작은딸 천샘이었다(자세한 내용은 '꽃짐'을 참고 하시기를). 그리고 시간은 흘러 나는 올 3월 12일 이메일을 통해 한 통의 부고를 받았다. '정기용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평화박물관 건립추진위원회의 상임이사인 역사학자 한홍구가 보낸 부고였다. 정기용 선생님은 평화역사박물관을 짖는 종자돈이 위안부 할머니한테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고통의 연대!'라고 말했다. 이후 이 말은 평화박물관이 추구하는 목표가 되었다.

'사람 건축 기술'은 '생태 건축가'라 불리는 정기용이 지난 20여년간 써 온 건축과 도시에 관한 글들을 묶은 책이다. 여기서 저자는 이 땅의 천민자본주의적 건축문화에 누구보다 분노한다.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인성을 파괴한 대표적인 건축물이 아파트다. 아파트는 '동네' 이름을 없애고, '대기업' 이름을 내세운다. 거주의 가치보다는 부동산의 가치에 집착하고, 인간적 삶을 추구하기 보다는 '면적'을 위해서 이 땅의 사람들은 삶을 영위한다. 전국민의 60 ~ 70%가 획일적인 아파트에 거주하는데도 '뉴타운'이란 이름으로 평온한 민중들의 삶터를 파괴하고 2%에도 못미치는 갖은 자들을 위한 정책을 집행한다. 그러기에 가족끼리 오순도순 살던 집을 재건축한다는데 두손 들고 '경축!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라는 현수막을 붙이고 환호성을 지른다. 정말! 한국적인 진풍경이다. 또한 통나무집이나 황토방, 또는 황토집이란 것은 결국 주택을 보조건강식품이나 한약재로 전락시키고, 항생제화 시킨다. 세계 제1의 1인당 시멘트 소비국인 한국은 전 국토를 보기좋게 공사장으로 탈바꿈 시켰다. 한국은 매일 공사중이다. 왜곡된 경제구조는 경기회복을 위해 '건설'이란 이름의 공룡에게 '파괴'라는 먹이를 던져주는 광란의 몸짓이 바로 이 땅의 경제성장인 것이다. 이 땅의 건축은 문화적 산물이 아닌 '상품'으로 간주하는 집장사들이 주체가 된지 오래다. 아마! 전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건축 환경에 처한 이들은 분명 한국의 건축가임이 분명하다.

그나마 저자를 대중에게 알린 작품은 전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 사저'일 것이다. 조중동 찌라시들은 그 건축물을 '아방궁'이라 흠집내기 바빴지만, 건축가로서 저자는 흙과 나무를 재료로 한 지붕 낮은 불편한 집을 설계했다. '땅이 살아야 한다.'며 흙의 숨결과 정신을 보듬었던 저자는 건축가 임에도 '바빠서 집 지을 시간이 없다'고 서울 명륜동 다세대 셋집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리고 '창문으로 보이는 북악산과 종묘, 창덕궁, 창경궁, 비원이 모두 내 집터'라며 집의 물리적 구속력을 경계했다. 선생님은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묻힌 이후 민주열사들의 안식처인 모란공원에 묻혔다. '사회적 건축가'이셨던 선생님께 어울리는 장지인 셈이다. 이 책은 선생님의 전집 시리즈 중 한권이다. 늦었지만 부지런히 선생님이 남기신 글들을 찾아 읽어야겠다. 올초부터 평화박물관을 후원하게 된 인연으로 선생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이나마 보게 된 것을 다행이라 여긴다. 아둔한 나는 민중들의 삶의 고통을 어루만지던 건축가를 사후에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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