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산책시편 / 마음의 오지
지은이 : 이문재
펴낸곳 : 민음사 / 문학동네
날씨가 사라졌어요/날씨는 이제 없습니다
날씨는 기상청 예보에만 있지요/전날 밤 텔레비전과 신문에서/날씨는 잠깐 보였다가 지나갑니다/방송이 체감온도 영하 15도라고 일러 주면/사람들은 그 순간에 추위를/다 겪어 버리는 것이지요/이튿날 아침에는 그 다음 날의/날씨를, 아니 예보를 기다리게 됩니다/날씨는 언제나 당일과는 무관합니다
제가 조만간 편지 띄우겠습니다/날씨와 만나러 한번 나갑시다
산책시편의 부제로 '산책시 4'라는 꼬리표가 붙은 '날씨가 사라지다'의 전문이다. 그렇다. 현대인에게 날씨의 변화는 아무 관계가 없다. 냉난방이 훌륭한 아파트에서 자고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에어컨이나 스팀이 씽씽 돌아가는 빌딩속 회사로 출근한다. 삼복 더위에도 냉방이 지나친 사무실의 근무복은 긴팔이다. 한겨울 바깥은 영하의 날씨이지만 아파트는 반팔 속옷 차림이다. 값싼 화석연료를 흥청망청 대기로 날려 보내는 호모 사피엔스의 만행은 그 업보로 기후변화를 초래한 지구온난화로 파멸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말그대로 망각의 동물이다. 브레이크 고장 난 열차의 속도에 중독되어 오히려 스피드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시인의 두번째 시집인 '산책시편'에는 모두 76편의 시가 실렸는데, 그중 연작시는 산책시 8편, 부사성 13편이다. 세번째 시집 '마음의 오지' 53편의 시에도 연작시로 '농업박물관 소식' 5편과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9편이 실렸다. '환경'이라는 말의 개념에는 인간중심주의가 또아리를 쳐 가능하면 '생태'라는 말을 쓴다는 시인은 '생태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서정시의 새 지평을 연 시인'으로 평가 받는다. 생태주의자로서 환경운동가로서 시인은 생태적 상상력이란 '자본주의 산업 문명이 지니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산업화를 지나 정보화 시대를 건넌다는 이 땅에서 농업은 서울이라는 괴물 도시 한복판의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풍요와 편리를 내세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인류의 먹거리는 이 땅에서 골동품으로 전락했다. '농업박물관 소식' 연작 중에서 '허수아비가 지키다'라는 부제가 붙은 시 2연은
농업박물관 앞뜰에는 가을이 한창입니다/어린 아들에게 고개 숙인 벼의 한살이를/일러주던 한 아버지는 그 허수아비가/지키는 참새떼가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그 허수아비가 왜 진짜 허수아비인지도/말해주지 않았지요
여기서 굳이 참새떼는 이 땅에서 누구를 가리키는 지, 이 땅의 농부는 왜 진짜 허수아비가 된 것인지를 말하면 군소리가 될 뿐이다. 나는 시인의 시집 중에서 '제국호텔'을 가장 먼저 잡았다. 함양 덕유산 자락에서 오미자 유기농 농사를 짖는 후배를 찾아 가면서 자투리 시간을 때우려 시집 한권을 골랐다. 학창시절 어느날 우리는 길을 걷다가 길가 호텔의 상호에 분개했다. '임페리얼 호텔' 그때 우리는 한참'사회구성체' 논쟁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시집은 지금 후배의 산골 오두막 책장에 꽂혀 있을 것이다. 시집의 책 날개는 시인의 고향이 경기 김포라고 알려 주었다.(시인은 분명 김포 검단에서 태어났지만, 행정구역 개편으로 검단은 현재 인천 서구에 속한다) 야! 나의 고향에도 이런 멋진 시인이 있었구나. 왜냐하면 시집의 시들은 다국적 기업을 앞세워 제3세계를 착취하는 선진국(?)들을 성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녹색평론을 정기구독하면서 시인의 유일한 산문집인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를 잡았다. 그 책은 나의 아둔한 뒷통수를 꽝! 때렸다. 그동안 생태 평론은 김종철, 생태 에세이는 최성각, 생태 소설은 김영래와 이시백을 손꼽았는데, 대표적인 생태 시인을 나는 찾을 수가 없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는가. 나는 부리나케 시인의 두번째와 세번째 시집을 손에 넣었다. 그러고보니 시인의 시집을 출간 역순으로 손에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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