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대빈창 2011. 6. 13. 04:43

 

 

책이름 :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지은이 : 유용주

펴낸곳 : 솔

 

시인 유용주의 저서 중 데뷰시집인 "가장 가벼운 짐'이 그동안 내 책장에 유일하게 꽂혀 있었다. 초판 3쇄 발행으로 2002년 1월에 출간되었다. 목수일을 하는 노동자의 시집으로 나의 시선을 뒤늦게 끌어 구입한 것으로 기억된다. 이 책은 「MBC !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선정도서로서 시인을 대중에게 어필해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을 드날리게 만들었다. 나에게 온라인 서적 가트에 가장 많이 넣어졌다가 되물린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보길도 강제윤 시인 돌집민박에서 마주쳤던 산문집. 하지만 세상에 빛을 본지가 해묵었다는 점과 베스트셀러에 대한 나의 삐딱서니 기질에 자꾸 머뭇거리다 이제서야 책씻이를 했다. 그리고 너무 늦었구나! 하는 후회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아쉬움으로 시인에게 1997년 제15회 신동엽 창작기금을 수여받게 한 두번째 시집 '크나큼 침묵'을 곧바로 시장바구니에 던져 넣었다.

이 책은 4부로 나뉘었고, 모두 16편의 글과 시인의 절친인 아동문학가 안학수의 발문 '바람에 기대어 우는 서낭'과 문학평론가 임우기의 해설 「서민적 문학 '밑바닥 문학'의 정신」으로 엮어졌다.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은 78개의 斷想으로 이루어졌는데, 첫 문장 '내 문학은 내 삶뿐이다'가 시인의 문학관의 전부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는 14살에 제도권 교육에서 떨려나 온갖 굳은 일로 밥벌이를 지탱하면서 검정고시로 중등과 고등과정을 패스한 시인의 어렵고 어려운 어린 시절의 회상기다. '누님의 겨울'은 대처에서 식모살이하는 누나가 명절날 사다 준 운동화를 껴안고 잠든 어린 시인. '얇은 베니어판의 추억'은 어린 시인에게 쏟아지는 세상의 야멸찬 냉대와 폭력. '봄바람과 싸웠다'는 봄밤 귀신과 드잡이하는 겁많은 시골 외딴집의 시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한 도보 고행승에 대한 중간 보고', '먼 바다에서 온 물봉선', '어느 게으름뱅이가 쓴 쥐똥나무 이야기'는 시인 정낙추, 작가 한창훈, 시인 박남준, 시인 이정록의 책에 실은 발문이고, '시인이 시인에게'는 시인 송찬호에게 보내는 편지글이다. '장산리 왕소나무'는 고인이 된 소설가 이문구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에 대한 인터뷰다. '고주망태와 푸대 자루'는 2000년 실천문학에 실린 시인의 단편소설이고, '맨 처음 정신으로'는 신동엽 창작기금 수혜소감이다. 그리고 '시작메모가 있는 시'와 '거미가 짓는 집'은 시인 최은숙, 이재형, 이면우 시에 대한 시인의 해설이다.

중국집 배달부, 음식점 접시닦이와 칼잡이, 제과점, 구두닦이, 귀금속 세공, 유리공장, 사탕공장, 막노동판, 술집 지배인, 트럭운전, 목수, 우유보급소... 등등. 거기다 감방까지. 시인의 떡대도 대단하여 첫인상이 뒷골목 어깨가 연상된다. 시인의 지옥같은 밑바닥 세월을 통과해 온 체험이 우러난 이 산문집은 '예외적이고 별종적인' 책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나는 젊은 시절 공장생활을 하며 노동시집을 잡았으나, 그 시집들에는 당위만 있었지, 현실이 살아있지 못했다. 그런데 핍진한 노동자의 삶(룸펜 프롤레타리아)의 역동성과 진정성이  어우러진 시인의 글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시인을 좀더 알아야겠기에 산문집 한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시장바구니에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을 담을 수밖에 없었다. 시집 '은근 살짝', 산문집 '쏘주 한잔 합시다'. 기생 오래비같이 예쁘장하게 치장한 오늘의 문학에 신물이 난 나에게 시인의 일갈이 가슴을 울린다. '좋은 작품은, 온몸으로 일하고 치열하게 삶을 밀어붙인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렇다. 내용이 형식을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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