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한국의 늪

대빈창 2011. 6. 16. 05:24

 

 

책이름 : 한국의 늪

지은이 : 강병국

찍은이 : 최종수

펴낸곳 : 지성사

 

4부자는 기대 반 설레임 반에 달뜬 마음으로 들녘으로 향했다. 수확을 눈앞에 둔 황금 벌판이 출렁거렸다. 며칠 전에는 논물을 말리면서 민물새우를 몇 가마니나 잡았다. 고된 낫질을 기다리는 벼베기에 앞서 조금이라도 힘을 덜 들이기 위해서는 논바닥이 쩍쩍 금이 갈 정도로 말라야했다. 모기장 그물을 대고 물꼬를 텄다. 까만 토하들이 새까맣게 탁탁 튀어 올랐다. 민물새우는 어머니 손을 거치면 밥도둑인 토하젓이 될 것이다. 말린 새우는 겨우내 찌게를 끌이거나 양념에 버무려 밑반찬으로 먹었다. 여기저기 논마다 수렁에서는 김을 뿜었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서늘해 진 것이다. 한강도 마른다는 갈수기이지만 수렁은 겨울 내내 물안개를 피워 올렸다. 비경지정리 지역이었던 나의 어릴적 김포 들녘 늦가을 풍경이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모세혈관처럼 들판 구석구석을 적시던 지류가 일차로 모이는 '압록강'이었다. 이 이름은 '앞 노깡'이 부르기 좋게 변한 것이 틀림없다. 마을은 앞 벌판과 뒷 벌판에 둘러싸여 있었다. 여기서 '노깡'은 수로에 건설된 콘크리트 구조물을 이른다. 어르신네 말씀에 의하면 일제 때 축조되었단다. '앞 벌판의 노깡'이 바로 '압록강'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들은 우선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수로의 높은 지점에 댐을 쌓았다. 그리고 런닝구 바람으로 압록강의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얼마나 흘렀을까. 콘크리트 구조물인 압록강의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뱀장어, 메기, 잉어, 참게 4종만 주워담았다. 작은 고기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대형 플라스틱 함박에 고기가 가득했다. 얼굴과 옷은 온통 개흙 투성이였지만 4부자는 예상보다 훨씬 더한 수확에 웃음이 얼굴가득 퍼졌다. 그시절 민물고기는 종류도 많았지만 크기도 엄청났다. 더듬질의 대가인 옆집 아저씨는 이 시기만 되면 뱀장어를 잡았다. 늦가을 한강 지류에서 가을 햇볕을 쬐러 나온 뱀장어를 맨손으로 잡아왔다. 그 크기는 엄청났다. 뱀장어 머리를 잡고 치켜 들어도 꼬리가 땅바닥에 질질 끌려 다녔다. 지금은 어떤가. 경지정리로 바둑판처럼 말끔하게 단장된 앞 벌판은 농로까지 시멘트로 포장되었다. 용수로와 배수로는 일직선으로 사통팔달 물대기가 편하지만 송사리 한마리 볼 수 없다. 동네까지 쳐 들어온 공장에서 내뿜는 오폐수로 수로의 물색깔은 총천연색이 되었다. 사체를 뜯어먹는 지독한 우렁이만 득시글 거린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늪(내륙습지)와 갯벌(연안습지)에 대한 보고서다. 한국의 주요 습지(항상 물기를 머금은 땅)는 현재 1,070㎢ 넓이다. '한국의 늪'은 2006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는데, 이 땅에는 그동안 경천동지할 변화가 매일 진행되고 있어 개정판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이 책에는 내륙습지 56곳과 연안습지 20곳 등 총 76곳의 늪(습지)가 소개되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경남 창녕에서 열린 제10차 람사르 총회 개막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람사르 협약 총회를 계기로 습지 보호 지역과 협약 등록 습지를 지속적으로 늘려 나갈 것이며, 람사르 협약 모범국가가 되겠다.'고. 정말 창피한 노릇이다.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규모 토목공사인 '4대강 사업'으로 내륙습지를 완전 난도질해 버렸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땅에 내륙습지가 몇 군데 남아 있게 될 것인가. 그렇다고 연안습지는 안전한가. 서해안의 모든 만에는 이제 방조제가 가득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화룡정점이 새만금 아니던가. 한마디로 이 땅의 경제성장이란 조상들이 물려 준 금수강산을 걸레로 찢어 발기는 개발지상주의에 다름 아닌 것이다. 간척의 나라 네덜란드는 '92년부터 둑을 허물어 간척 농경지를 다시 습지로 만들고, 스위는 일직선화시킨 하천을 다시 사행천으로 복원시키고, 독일은 100년전의 콘크리트 둑을 헐어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시키는 사업을 생태 복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땅은 세계인들이 경탄해마지않는 자연 습지와 금모래를 마구 파헤치고 콘크리트로 직강화시키는 '4대강사업'을 24시간 잠도 안자고 밀어 붙이면서 '녹색성장'이라 이름 붙였다. 언제인가 인터넷에서 절개지에 녹색페인트를 들러부은 중국의 '눈가리고 야옹!'하는 행태에 코웃음을 쳤는데, 이제보니 비웃을 일이 아니다. 이 땅의 젖줄인 4대강을 콘크리트에서 해방시키는 복원사업은 얼마나 아득할 것인가를 떠올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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