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말똥 한 덩이

대빈창 2011. 6. 20. 05:05

 

 

 

책이름 : 말똥 한 덩이

지은이 : 공광규

펴낸곳 : 실천문학사

 

강물은 몸에/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모래밭은 몸에/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새들은 지문 위에/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꾹꾹 찍고 돌아오는데/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수만 리 비단인데/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수십억 장 원고지인데/그걸 어쩌겠다고?/쇠붙이와 기계 소리에 놀라서/파랗게 질린 강.

 

이 시집에 실린 '놀란 강'의 전문이다. 짬이 날 때마다 가끔 들르는 한 환경단체 사이트의 게시판에 이 시가 올라왔다. 음! 삽질정권이 '4대강살리기'라는 어불성설로 국민을 우롱하며 토건마피아에게 국민의 피땀어린 세금을 무더기로 퍼주는 '대운하 사업'이 말만 바꾼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의 경고문이구나. 솔직히 나는 시인 공광규 이름 석자도 들어보질 못했다. 검색창에 시인의 이름을 입력한다. 이 시는 시인에게 2009년 제4회 윤동주문학상을 안겨 주었다. 이 시가 실린 시집을 구해야겠다. 온라인 서적에 들어가 시인을 검색하니, 등단 22년째로 최근 다섯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다행히 '놀란 강'이 시집에 실려 있었다. 시집은 3부로 구성되었고, 51편의 시가 실렸다. 1부 '몸관악기'는 소시민의 비애를 다룬 16편, 2부 '미루나무 붓글씨'에는 도심속에서 마주치는 사물에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19편, 그리고 3부 '체온'에는 죽음과 폐허로 변한 고향풍경 16편의 시가 실렸다. 그리고 시집에는 통상적으로 맨 뒤에 붙는 문학평론가나 지인의 해설 대신 시인의 산문 '양생의 시학'이 실려 있다. 이 글은 '양생(養生)을 위한 시 쓰기'에 대한 시인의  시론(詩論)으로 '정직한 마음을 담아야 하고, 세상의 원리와 물정, 인간관계를 두루두루 잘 알아야 하고, 사회현실과 호흡하며, 본질을 훼손치 않고 독자들이 재미를 느껴야 하는 양생 시학의 구축을 위한 공부는 동양시학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그러고보니 시인의 공식 직책은 한국노총 금융산업노동조합 정책실장이다. 시인은 수상 소감으로 '누구나 알아먹기 쉬운 시'를 쓰고 싶으며, '현장과 거리와 광장에서, 중심이 아니라 소외의 구역에서 우리의 일상과 정신이 담긴 시를 갈고 닦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시어는 쉽게 읽혀지는데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시가 몇 편 눈길을 끈다. 그리고 시집에는 수많은 절과 암자가 등장한다. 무량사, 천은사, 법성암, 용수사, 월정사, 정취암, 도솔암 내원궁, 향일암 등. 시인은 불교라는 그릇을 빌어 자본주의적 일상을 넘는 생명과 우주가 하나가 되는 생태적 삶을 노래하거나 세속적 분별에 가려진 진실을 나름대로 독자에게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 그중 한편의 시 '폭설 아침' 전문을 싣는다.

 

부드러운 눈이/꼿꼿한 대나무를 모두 휘어놓았습니다

소나무 가지를 찢어놓고/강철로 만든 차를 무덤으로 만들었습니다

크고 작은 지붕들을/폭 덮어 평등하게 만들었습니다

개 한 마리 함부로 짖지 않고/쥐새끼 한 마리 돌아다니지 않습니다

따악!/앞산에서 설해목 부러지는 소리 한 번

고요가 모두를 이긴/폭설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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